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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공정거래법 집행에 있어 경제분석 강화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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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이기종
- 등록일
-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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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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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평점
- 7113 / -
최근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차기 법무장관 내정자인 에릭 홀더(Eric Holder)는 오바마 행정부가 독점금지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게 될 것임을 강조해 왔다고 한다. 부시 행정부에서 적잖이 입지가 좁아졌던 독점금지정책이 금융위기 극복과 그 재발 방지를 위한 규제강화 경향과 맞물려 권토중래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에서의 움직임은 우리의 공정거래법 집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의 경쟁을 촉진하고 반경쟁적 관행과 시장지배력의 남용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은 자유시장경제의 심장에 비유할 만큼 중요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이 그 본연의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행정부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는 것은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특히 공정거래법의 집행이 문제된 관행의 경쟁제한적 효과에 대한 엄밀한 경제분석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분석은 경쟁을 해치는 유해한 행위와 경쟁을 촉진하는 무해한 행위를 정확하게 변별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과잉규제와 과소규제의 오류를 모두 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업이 시장상황의 변화와 경쟁자들의 행동에 대응하여 영업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한다고 하자. 이때 이러한 영업전략이 반경쟁적인 독점력의 남용인지 아니면 오히려 경쟁을 촉진하는 바람직한 행동인지의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경우 피상적인 관찰만으로는 문제가 된 영업방식의 경쟁제한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우며, 정치한 이론적 모델과 방대한 데이터에 입각한 치밀한 경제분석을 실시해야만 그 경제적 효과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합병의 경우 기업들이 과거에 실시한 영업전략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합병 이후의 가상 상황을 예측하고 그러한 가상 상황에서 기업들의 행태가 더욱 경쟁적이 될 것인지, 반경쟁적이 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상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한 고도의 경제분석 기법을 적용하지 않고서는 합병의 경쟁제한적 효과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심지어 담합(카르텔)과 같이 반경쟁성이 자명한 행위유형이 문제된 경우에도 경제분석이 필요할 수 있다. 즉, 담합을 했다는 사실이 합의서나 자백 등의 직접증거에 의해 입증되지 않은 경우 담합이 있었는지 여부를 정황증거에 의존하여 판정하여야 하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정황증거의 하나로 시장상황과 기업들의 행태에 대한 경제분석이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분석은 문제된 행위의 경쟁제한성 여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위법한 것으로 판정된 행위에 대한 적절한 제재조치를 재단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예컨대, 담합이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에 대하여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에 엄밀한 경제분석을 활용하여 문제된 행위로 인해 발생한 부당이득액을 정확하게 추산하여 과징금 산정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면 피심인인 기업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손해배상액의 산정을 위해서는 경제분석의 활용이 불가결한 것이다.
공정거래법의 집행에 있어서 경제분석의 역할이 이처럼 긴요하기 때문에 한 나라의 경쟁정책이 얼마나 선진적인지를 평가함에 있어서 경제분석의 활용정도가 그 중요한 척도가 되곤 한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적어도 아시아에 있어서는 가장 앞서가는 경쟁당국의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집행에 있어서 경제분석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안을 수립하여 추진한다면 미국·EU 수준의 진정한 경쟁정책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정거래법 집행에 있어서 경제분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경제분석의 역량을 갖춘 인적 인프라를 확산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먼저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는 다양한 내부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경제분석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아웃소싱 등의 방법을 통해 경제분석 역량 제고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법원의 경제분석 역량 강화도 나날이 중요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행정소송은 물론 앞으로 증가가 예상되는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경제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거래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 및 재판관의 경제분석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실시가 시급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의 영업전략 수립과정에서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있는 요소들을 가려낼 책임이 있는 법무담당자들과 기업들을 위해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변호사에 대하여 공정거래 경제분석의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위법행위를 사전에 예방할 뿐 아니라, 외국 기업이나 당국과의 사이에 경쟁법에 관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우리 기업들의 효과적인 방어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종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kjl7@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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