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안순권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그 원인 및 배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과도한 저금리정책에 따른 과잉유동성이 초래한 부동산거품이 꺼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발생했고 그 여파로 미 유럽의 주요 은행들의 부실이 급증, 급기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금융쓰나미가 밀어닥쳤다는 것이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어난 대체적인 줄거리다. 그러나 호기심과 지적 열정이 넘치는 많은 분들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중국의 초베스트셀러인 화제작 『화폐전쟁(Currency Wars)』의 저자는 지난 3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큰 사건에는 국제금융 자본세력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 정부의 정책 및 감독 실패와 월가의 탐욕 등이 이번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들어온 독자들로서는 귀가 번쩍할 만한 주장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미네르바’ 라는 인터넷 논객이 헤지펀드의 ‘한국공격설’에 이어, 올 3월부터 일본자금의 침투가 시작돼 국내기업을 사들인다는 이른바 `노란토끼론`을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음모론의 내용은 황당하고 실제와는 다른 경우가 많지만 위기를 조종하는 배후세력의 존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경제위기가 터지면 곧잘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음모론이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라고 할 만큼 위기의 강도가 클수록 음모론의 논리적 전개도 상식을 뒤엎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의 주장은 단순히 음모론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범상치 않은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다.
저자는 워털루 전쟁이후 지금까지 국제금융 자본세력이 세계경제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배해온 역사적 사례들을 들고 있다.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갈등을 빚었던 미국의 대통령 링컨, 제임스 가필드, 존 케네디는 국제금융 자본 세력이 사주한 정신이상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미연방준비은행은 민간은행이며 미국정부에는 화폐발행 권한이 없다. 화폐발행 권한이 없는 미국과 유럽의 정부는 전비조달을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국제금융 자본세력이 지배하는 금융시스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1~2차 세계대전, 1929년 대공황, 1970년대 석유위기, 1992년 소로스의 영국파운드화 저격 사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등도 국제금융 자본세력의 음모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1장에서 7장까지의 이 같은 분석들은 기존의 관련 문헌들을 주로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의 화폐전쟁 가능성과 중국의 대응책 및 미국발 금융위기 확산가능성을 예측한 8장에서 10장까지의 얘기는 탁월한 분석력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플라자협정에 의한 엔화절상과 거품조장으로 일본경제를 침몰시킨 국제금융자본이 벼르고 있는 최고의 목표는 중국이다. 금융시장이 대부분 개방되고 위안화 절상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은 이미 선전포고 없는 화폐전쟁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21세기에는 화폐를 통제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 화폐발행권을 독점할 경우 얻게 되는 엄청난 이익을 챙기려는 국제금융재벌에게 중국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화폐발행권을 통제하고 중국경제를 해체시켜 세계정부와 세계화폐를 만드는 최후의 걸림돌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국제금융 자본세력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수단 중 하나는 경제불황의 조작이다. 신용대출을 확대시켜 거품을 일으킨 후 갑자기 자본회수를 통해 통화량을 줄임으로써 자산가치 폭락과 경기침체를 유도한다. 자산가격이 폭락할 경우 저렴한 가격에 사들이는 ‘양털깎기’로 국제자본이 큰 돈을 번 대표적 사례가 한국이 당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라는 지적에 씁쓰레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강한 민족정신을 발휘한 한국이 정부와 국민의 노력으로 국제금융 자본세력의 의도에 휘말리지 않고 대규모 기업과 은행 도산사태가 발생치 않은 채 빠른 시일 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성공했다고 지적한 대목은 위로가 되었다.
저자가 국제금융 자본세력의 중국경제 붕괴 음모에 대항하여 내부적으로 견고한 금융방화벽을 쌓고 대외적으로 금융홍수방지 댐을 구축해야 한다고 한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외자은행의 인플레이션을 조장하여 중국의 자산에 거품이 끼게 한 다음 갑자기 통화긴축을 조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달러체제의 붕괴에 따른 세계금융 홍수에 대비하여 금은(金銀) 보유고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기축통화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중국 정부의 장기적 목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매년 2,000억 달러를 들여 9,500톤의 황금을 5년간 모으면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을 추월함으로써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다소 황당하게 들리기도 한다. 세계교역량이 매년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본위제 시대로 돌아갈 만한 여건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내부에서 기축통화 교체에 관한 염원이 이처럼 강하다는 점을 드러냄에 따라 앞으로 국제금융질서 재편을 둘러싼 중국의 도전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책은 2007년 6월 중국에서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저자가 그 때에 이미 심한 거품이 발생하고 있는 파생금융상품과 달러체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금융위기의 도래를 예측했다는 점에서 선견지명이 놀랍다. 사실상 시작된 세계적 화폐전쟁의 의미를 파악하고 전개방향을 예측하며 대응방안을 세우는 데 관심이 많은 분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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