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임병화
2011년 국내 자본시장에 급진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도입되었다. 대형투자은행 육성과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그리고 대체거래소 도입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투자환경이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다. 선물, 신탁, 보험, 증권회사와 같은 금융기관의 투자 폭을 넓혀 주었던 자본시장통합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정부에서 금융선진국의 금융시스템을 한국시장에 심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성숙한 투자전문가나 위험관리자를 보유하지 못한 국내 금융시장에서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투자 제한 없이 시장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등장으로 새로운 매매기법이 개발되어 다양한 투자자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또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퀀트는 다양한 매매기법을 보다 정교하고 빠르게 수행하는 기법을 개발하여 헤지펀드를 비롯한 금융시장의 규모를 키우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퀀트란 고도의 수학ㆍ통계지식을 이용해서 투자법칙을 찾아내고 컴퓨터로 적합한 프로그램을 구축해서, 이를 토대로 투자를 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Quantitative의 줄임말이다. 금융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단어이고 이미 국내에서도 대형 증권사에서는 박사급 퀀트들을 몇 명씩은 데리고 있다. 미국시장에서 활동하는 퀀트에 비해 국내 자본시장에서의 이들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단순 금융상품의 가치평가 정도의 업무가 주어진다. 그러나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 도입으로 국내에서도 퀀트의 역할 재정립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들의 금융시장에서의 역할 비중이 크게 넓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사실 퀀트라는 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퀀트가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국내에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금융권의 탐욕으로 인한 무분별한 투자가 이루어졌고 버블 붕괴 이후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때 퀀트들이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가능할 수 있도록 투자가치가 높은 불완전한 상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고 금융기관이나 전문투자자들에게 꾸준한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거래 시스템도 함께 제공하여 버블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의 기자인 스캇 패터슨이 바로 이 ‘퀀트’라는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4명의 거물급 퀀트를 중심으로 퀀트의 탄생과 그 동안의 업적, 그리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쉽게 소설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전환사채시장에서의 차익거래를 주로 이용했던 켄 그리핀, 모건스탠리에서 자동트레이딩 시스템을 개발했던 피터 멀러, 골드만삭스에서 모멘텀 투자를 주로 했던 클리프 애스네스, 도이치뱅크에서 신용파생상품 거래를 시작했던 보아즈 웨인스타인이 그 주인공들이다. 모두 1990년대에 들어 활동을 시작하여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직전까지 미국 내에서 최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퀀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각자 자신들만의 투자전략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주 모여 포커를 즐기는 친한 사이들이다.
이들 퀀트들의 매매기법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상품의 가격이 적정가격보다 높은지 또는 낮은지 평가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이론 가격보다 높게 거래되는 상품은 매도를 하고 낮게 거래되는 상품은 매입하여 무위험 이익을 얻는 것이다. 물론 같은 성격의 상품을 서로 매도, 매입해야 위험관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풋옵션의 가격이 고평가 되어 있으면 풋옵션 매도를 하고 위험관리를 위해 풋옵션의 기초자산인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수익은 시장의 방향성이 아니라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온다. 현재 저평가된 금융상품은 곧 적정 가격을 찾아 오를 것이고 반대로 고평가된 상품은 내릴 것이라는 믿음이다. 결국 이들은 컴퓨터로 이론가격으로부터 벌어져 있는 상품을 찾아 매매를 하도록 프로그래밍만 해 놓으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퀀트가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87년 10월의 블랙 먼데이, 1998년 여름의 LTCM 파산, 2007년 8월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등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퀀트의 투자전략들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머니그리드로 표현한 2007년 8월요인(August Factor)에 대한 이야기는 효율적인 시장을 믿었던 퀀트들의 투자전략이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일 때 일어나는 파급효과가 금융시스템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백미라 할 수 있다.
금융 붕괴에 대해 이해하는데 이보다 정확한 해설서는 없어 보인다. 붕괴 이후 변화된 금융시장과 새로운 퀀트들의 투자기법, 그리고 효율적 시장을 가정한 기존의 재무이론에서 벗어난 이론들에 대한 소개는 이 책의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금융전문 기자답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금융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책을 소화하는데 무리가 없다. 과거 20년의 미국 금융시장을 이해하길 원하거나 퀀트의 세계, 그리고 금융 붕괴 이후의 퀀트 역할변화가 궁금한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또한 앞으로 국내에 도입될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함께 국내 퀀트들의 역할 확대를 기대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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