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김선우
“대통령들은 왔다가 가지만, 연방대법원은 언제까지고 이어 진다 ; 윌리엄 태프트 William H.Taft (미국 27대 대통령, 10대 연방대법원장)”. 이는 저자들이 서문에서 인용한 문구로 이 책은 미 연방대법원이 1789년부터 2012년까지 내린 수많은 판결 가운데 31가지를 골라 판결의 내용과 배경, 그 후의 이야기들을 법률가가 아닌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소개하고 있다. 독자들은 종교, 정치, 경제, 사회를 망라하는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들을 통해 200여년이 넘는 시간을 관통하며 살아 있는 미국 헌법을 만남과 동시에 윌리엄 태프트의 위 문구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소위 판례법을 중시하는 영미법 국가로 분류되고 우리나라는 독일법의 영향을 받은 대륙법 국가로 분류되어 왔다. 또한 미국과 우리나라는 역사와 전통, 문화도 매우 다르다. 이렇게 여러 모로 우리나라와 다른 미국이지만, 미국 최고법원인 연방대법원이 지난 200여 년간 다룬 판결들은 시공을 거슬러 우리와 비슷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법률의 내용이나 사안의 사실관계는 다르겠지만, 결국 본질은 개인의 자유ㆍ권리와 국가 권력 간의 문제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또한 ‘규제할 것인가ㆍ규제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규제한다면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가’의 문제 역시 헌법과 법률의 해석 영역을 넘어 사상과 이념까지 아우르고 있음을 저자들은 ‘에필로그’ 부분에서 조심스레 언급하고 있다.
31가지 판결들 중 몇 가지 판결들을 살펴보면, 우선 수정헌법 제2조의 해석과 관련하여 미국 내에서도 불꽃 튀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총기 소유 판결[District of Columbia vs Heller; 2008]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수정헌법 제2조의 첫째 절과 두 번째 절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있었다. 이 둘의 관계 정의에 따라 관련 규제 법령의 위헌여부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결국 총기를 완전히 분해하여 소유하여야 한다는 해당 법령은 위헌이라고 결론이 내려졌는데 비록 우리나라는 총기소유가 금지된 나라이기는 하지만, 헌법 해석 논쟁이라는 측면에서 최근 헌법 제119조 해석과 관련된 핫 이슈인 경제민주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편, 미국 로스쿨 입학 시 흑인 우대정책과 관련한 백인 역차별 판결[Grutter vs Bollinger ;2003]은 결국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는데, 이 결론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주장한 대법관이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 출신 대법관이라는 사실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본래 단일민족국가이지만 인종을 넘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정책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시장에서의 독점금지와 관련한 판결인 [Standard Oil vs United States ;1911], 주식 내부자 거래와 관련한 판결인 [O’Hagan vs United States;1997]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시장경제체제하의 시장의 자유와 규제 간에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들 역시 당해 판결의 결론을 떠나, 미국 내에서도 이 논쟁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어려운 문제임을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그 밖에 최저임금제가 위헌인지 여부를 다룬 판결인 [West Coast Hotel Co. vs Parrish ;1937], 2012년 미국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소위 오바마 케어 판결인 [NFIB vs Sebelius ;2012]은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5:4로 박빙을 다투며 내려진 판결이다. 이 두 판결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논리의 흐름을 따라 가다보면, 이 책 저자들의 의도대로 독자들은 당대 미국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연방 대법관들이 판결에 앞서 벌인 열띤 토론과 논쟁의 가장 치열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방 대법관들의 판결이 항상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일찍이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최고의 사법기관으로 자리 잡아 왔지만, 저자들도 언급하듯이 두고두고 비판에 오르는 사례, 국론분열을 초래한 사례, 연방대법원과 대통령간의 힘겨루기가 된 사례도 있으며 연방대법원 스스로 과거의 판례를 뒤집고 새로운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독자들도 느끼게 될 것이다. 31개의 연방대법원 판결의 결론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논리의 흐름을 읽으며 이 책을 읽는다면, 미국 200여년의 역사와 그 역사를 움직였던 판결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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