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김윤진
※ 블랙 스완: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그러나 후에 보면 불가피했음을 알게 되는 파급력 큰 사건. 18세기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발견한 백조의 다른 과로 이 검은 백조의 발견으로 ‘백조는 희다’는 서구의 경험 법칙이 무너짐. 최근 나온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영화와는 무관
할아버지, 은퇴 연설 하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당 배추 20주년이라니요, 적적하실 때만 밭질 하시는 거지요? 반드시, 쉬엄쉬엄 하셔야 해요.
여기 레바논은 신이 준 최고의 음식이라는 올리브가 많아서 좋고, 매연이 많아서 숨을 잘 못 쉬겠어요. 그래도 레반트 지역은 기대 이상으로 문화가 섞여 있어서 볼 거리, 생각할 거리, 느낄 거리가 많아요. 탈레브 교수가 이런 데서 태어나서 생각의 너비가 넓나 봐요.
서울에서 지구 반대편 마천루 많지 않는 곳으로 날아와서야 생각이 또렷해지는 것 같아요. 금융 시스템은 인간이 만든 거의 완벽한 시스템이었는데, 왜 대마불사 투자은행은 망해가지고 4년 넘게 전 세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걸까요? 연준이 금리를 너무 장시간 동안 낮추어 와서 주택시장 버블을 만들었다, 투자은행 파생 설계가가 말도 안 되는 신용 보강을 통해 장사를 했다, 규제가 없었다, 빚을 내서 소비를 조장하던 자본주의적 선전이 문제다, 말이 많은데, 결국 사람들의 ‘선택’이 핵심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기적(self-interested)이기도 하고 합리적이기도 하고 공정성에 기대기도 하는 한 사람의 선택이 모였을 때는 ‘큰 수의 법칙’1)처럼 극단치를 피해 여전히 합리적이기만 한 것은 아닐테니까요.
문제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경제 시스템이나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데, 노동에 대한 동기 부여가 안 되는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부유함 뿐 아니라 행복을 더 높여준다는 건 크게 바뀌지 않는 프레임이고, 중요한 건 무시무시한 ‘극단’을 다시 만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인구 약 5천만 한국의 대중가수 싸이가 올린 <강남 스타일> 노래 한 곡이 ‘클릭’의 형태를 통해 전 세계 몇 억 명의 인구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싸이를 순식간에 거나한 부자로 만들었음을 감안할 때, 전 지구적 연결성이 만들어내는 천문학적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또 보면, 금융 위기는 꼭 경제 위기로 이어지니까, 트레이딩 부서냐 M&A 부서냐 예대마진율을 높일 거냐 영업 활동에 대한 비중을 결정해야 할 금융기관 뿐 아니라 사업 확장을 결정해야 할 기업들, 소고기를 한 근 살지 두 근 살지 결정해야 할 주부들에게도 이 대비책은 해당되겠지요.
블랙 스완에 대해 잠깐 정리를 할게요. 블랙 스완이란 것은, 예측이 불가능한 사건으로 드물게 일어나서 파급력이 매우 큰, 뒤돌아보면 불가피했음을 알게 되는 사건이에요.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데이터로는 추정이 힘든 경우가 많아요. 데이터가 분석 가능할 만큼 많다고 할지라도 블랙 스완은 그 하나의 극단치가 너무 커서 나머지 전부에 영향을 주는 극단의 왕국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특히 경제·경영학의 영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보이는데, 200만 권의 책이 출판된다고 해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판매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고작 5~6권에 불과하다는 게 그 좋은 예에요. 조앤 롤링의 책이 출판되냐 마냐가 출판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거죠. 근데 조앤이 올해 새 책을 낼지 내년에 낼지 누가 알겠어요.
이러니 다양한 가정이 들어간 모델을 믿는 것이 위험해지는 거에요. 통계는 너무 중요하지만, 그것만 맹신하다가는 잘못된 숫자에 의존해서 이상한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생겨나는 거죠. 역사를 온 몸으로 ‘경험’한 ‘연륜’있는 연장자 혹은 대자연의 지혜를 의지하고, 그들의 ‘~하지 마’라는 부정적인 조언에 귀를 기울이라고 탈레브 교수가 권고해요. 복잡하게 뭘 장착하는 것보다 간단명료하게 차입을 늘리지 마!라는 식의 실천이 낫다는 거에요. 나심 선생님이 또 그러시더라고요. 위기에서도 버틸 수 있는 ‘보험’을 드는 게 좋다고요. 부채를 끌어다가 수익을 내는 회사보다는 리스크를 전가하고 수익을 반 내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신 듯해요. 전문화도 반대 하세요. 리카도의 전문화 그리고 비교우위 이론이 맞긴 하지만, 극단의 왕국에서는 전문화 하다가 무역하기 전에 그 기업이 굶어 죽을 수 있다고요.
어차피 틀림으로 전망은 하지 않을 것이고, 금융위기의 주범은 투자은행들이며, 버냉키를 쫓아내야 한다는 등의 다 동의하기는 어려운 신랄한 의견을 쏟아내는 탈레브 교수지만, ‘경제’라는 극단의 왕국 또한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이를 인위적으로 다듬는 것 보다는 블랙 스완이라는 무작위의 왕국에도 있다가 평온한 평범한 왕국에도 있어야 경제가 더욱 진화할 거라는 점에서 귀 기울이게 되는 데가 있어요.
황금의 시대는 또 오겠지요. 단 행동과 인식의 상호의존성 덕분에 ‘복잡성의 시대’라 특징지을 수 있는 현대에는, 전문가의 (예측) 오류 혹은 오만의 가능성에 대한 ‘겸손한 지혜’가 필요한 듯해요. 네, 경제학의 문제는 통계학의 문제이자 철학의 문제이고 문학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올리브로 김치를 담아 보고 싶은 밤이에요. 할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사랑을 담아,
손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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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큰 수의 법칙은 포트폴리오 이론에 나오는 것으로, 표본이 커지고 분산될수록 통계 결과는 유의미하며, 일부 예외적인 표본이
전체 결과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이론.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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