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강소라
고등학교에서 배운 과학 법칙 중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있다.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어떠한 고립된 물리계(system)의 에너지는 그 형태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총량이 항상 보존된다는 내용이다. 어려워 보이는 물리학 중 그나마 우리에게 친숙한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롤러코스터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그 에너지로 다시 높이 올라가며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롤러코스터는 어느 순간 정지하게 된다.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합인 역학적 에너지가 보존되기 위해서는 닫힌 계(system)라는 가정이 필요한 것이다. 현실에서는 바퀴와 레일 사이의 마찰 때문에 소리, 빛, 열에너지 등으로 에너지가 손실되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못한다.
경제학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시장경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수요가 감소해야 하지만 가격이 올라갈수록 찾는 손님이 많아지는 옷과 가방도 존재한다. 법칙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어떤 것이 현실에서 만족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물리학이나 경제학에서 쓰이는 법칙들 모두 특정한 가정이 성립될 때 적용된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롤러코스터의 에너지 보존을 방해하는 것은 마찰이었다. 그렇다면 수요법칙을 방해한 것은 무엇일까? 공급자의 수가 적어서일 수도 있고, 대체재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실은 이상적인 시장경제와 다르기 때문에 경제학의 각종 수식들이 반드시 들어맞을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의 경제는 이상적인 경제와 어떻게 다를까?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행동경제학’에서는 경제의 다양한 구성요소 중 특히 사람의 심리와 마음을 보다 잘 이해하고자 한다. 경제학에 심리학이 접목된 분야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 또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합리성에 대해 엄격하게 정의하는 주류경제학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람의 경제활동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경제학을 폄하하거나 ‘행동경제학’적 사고가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과장 섞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인 조준현 박사는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이자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 소장으로, 학교에서 강의하거나 월간 잡지에 기고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행동경제학’을 소개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고전부터 최근 이론까지 친절하고 유쾌한 설명을 덧붙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찰로 인해 소리, 빛, 열 등으로 손실되는 에너지를 함께 고려할 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경제학의 엄밀한 가정이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 짚어봄으로써 경제학을 더 잘 이해해보자는 취지의 내용이다. 교과서처럼 어렵고 딱딱한 표현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친구와 대화하듯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렇다고 그 깊이가 얕은 것은 아니다.
경제학에서의 사람, 즉 경제인이란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를 말한다. 이기적 동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욕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 바로 호모 에코노미쿠스다. 저자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개념 세 가지를 이기심, 합리성, 그리고 자기이해로 파악하며, 이러한 가정이 현실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사람이 정말 이기적인지 살펴보기 위하여 행동경제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실험이나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 ‘독재자 게임’ 등을 저자가 강의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시행해보고 그 결과도 꼼꼼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의 고전인 『국부론』을 예로 들기도 하고,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의 유행어와 영화 '타짜'의 대사를 섞어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가 어떠한지 살펴보거나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선택의 순간 사람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지 저자와 함께 고민하다보면, 어느 순간 탄력성이나 한계효용 같은 경제학의 기초개념뿐 아니라 기대효용이론(Expectation Utility Theory), 코즈의 정리(Coase theorem) 등의 경제학 이론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차례로 인간의 이기심, 합리성, 자기이해의 한계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행동경제학의 다양한 해석을 소개한다. 합리적이고 본인의 욕구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취해야 하는 것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소주보다 짜장면을 선호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떠한 순간에도 짜장면을 선택해야 하지만 애인에게 차인 친구 때문에 짜장면을 포기하고 친구와 함께 소주를 마시기도 하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선택이 이러이러하게 일관된다고 주장하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행동이 일관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며 더 나아가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반드시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주류경제학이 가정하는 것과 다르게 합리적인 것이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탐구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이며, 그렇다면 경제학이 경제학답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이해, 인간의 심리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근래에 기업들은 감성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가격과 질로 경쟁하기보다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제품 자체보다는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추억과 꿈, 자부심 등을 강조하여 ‘소비’ 행위 자체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주류경제학이 경제 전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면 행동경제학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선택의 순간에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철두철미하게 합리적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비합리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하여 호기심이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그에 대한 여러 석학들의 이론과 각종 실험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행동경제학뿐 아니라 주류경제학에 대한 이해도 보다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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