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통합 칼럼
[국민통합 칼럼 시리즈 05] 사회 갈등의 요인과 완화 방안
13. 3. 12.
김영용
갈등은 기본적으로 몫에 관한 것이다. 자연이 제공하는 한정된 먹이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는 동물의 세계가 이런 양상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동물의 세계에는 협동이나 교환이 없다. 먹이 다툼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싸움이다. 배불리 먹은 동물은 자거나 쉬지만 먹힌 동물은 죽는다.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비난하며 즐겨 사용하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된다.
인간 세계에서는 남의 몫이 증가하면 자신의 몫이 감소한다는 인식이 갈등의 원천이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그 치열한 경쟁이 바로 사람들을 다툼이나 충돌이 아닌 협동으로 인도한다. 노동 분업을 통한 협동으로 생산성을 높여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 제한을 완화하고, 서로 간의 교환을 통해 각자의 몫을 크게 함으로써 갈등을 조화로 해결한다. 이 점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질서의 운행 원리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많이 부족하다. 대중의 무지를 부추기는 식자(識者)들도 많다. “내가 가난한 것은 다른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이다. 기업가가 이윤을 많이 남겨 부자가 된 것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정부 간섭이 없어도 독점 가격이 만연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경제는 인간적이지 못하고 냉혹하다.” 등등의 몰이해와 왜곡 현상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역사적으로 많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지성의 탑을 쌓으며 설득에 나섰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는 근세의 인류 지성사가 보여주는 바다.
요즈음 한국 사회의 갈등은 내 몫 챙기기로 이어졌다. 생산에 참여하여 남에게 공헌한 만큼 내 몫이 된다는 건전한 논리는 설 땅이 없다. 부자는 남에게 크게 봉사했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라는 논리는 부자를 편드는 공허한 것이 되어 버린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통찰력이 이윤의 원천이라는 설명으로 대중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방해받지 않은 시장에서 독점이 된 것은 다른 사업자들보다 낮은 비용으로 양질의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차지한 위치라는 설명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잘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빈약한 물적 토대를 가진 사람들보다 한결 더 못하다는 교훈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난은 내 탓이 아니니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이제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비단 일반 대중만이 아니다. 상당수의 경제학 교수들을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밀튼 프리드만은 일찍이 “동학(同學)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행히 설득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있다”고 위안을 삼았다.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이러하니 선거에서 표를 얻어 당선돼야 하는 민주 사회에서 정치인들 역시 이들의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경제가 냉혹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냉혹하므로 기업가들이 이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듯이, 유권자가 이런저런 정책이나 규제를 원하니 정치인들도 이들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이해가 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정치인들의 인식 수준도 대동소이하다. 자연히 간섭주의 정책으로 갈등을 키운다. 큰 정부 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기존 제도를 좀 고친다고 해서 갈등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좌우측 통행 규칙 등과 같이 몫을 가르지 않고 만인에게 적용되는 공통의 규칙이나, 운전 면허증과 같이 남의 진입을 방해하지 않는 것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책들은 또 다시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뒤섞음으로써 갈등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증폭시키기 일쑤다.
결국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으로 가는 길은 대중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운행 질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것뿐이다. 대중이 설득되면 루트비히 미제스의 지적대로 대중에 의해 강요되는 자유주의 정부도 출현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력이 만들어내는 기득권의 장벽도 허물어져 갈등이 완화될 것이다.
대중을 설득하는 것은 물론 매우 시간 소모적이며 비용 소모적인 일이다. 그러나 사상이 세상을 바꾼다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가르침이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들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김영용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yykim@chon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