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사회통합 칼럼

[국민통합 칼럼 시리즈 14] 누가 국민통합을 해치는가?

13. 4. 11.

권혁철

무언가를 구입하기 위해 혹은 어딘가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중에 늦게 온 몇 사람이 새치기를 하여 먼저 입장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줄이 불분명해지고 급기야 줄이 무너져 버린다. 원칙이 사라지면 늦게 온 자, 힘 있는 자, 염치를 모르는 자, 목소리 큰 자, 먼저 왔다고 우기기 잘 하는 자, 타인의 자리를 자신의 자리라고 떼쓰는 자 등등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차례를 기다리던 일반 사람들은 뒷자리로 밀리기 일쑤다. 이렇게 어이없게 뒷자리로 밀리게 되는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차례를 어기고 새치기를 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왜 지금까지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었을까’하는 회의가 짙게 들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차례를 착실히 지키라는 이야기는 분노만을 더 키울 뿐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이런 지경이다.



최근에 발표된 국민행복기금을 보자. 국민행복기금은 지난 2013년 2월 기준 6개월 이상 연체한 채무자의 빚을 최대 50%까지 탕감해준다.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빚을 갚아가던 사람들은 빚을 갚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빚을 탕감해 준다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허탈해 하고 열심히 자기 책임을 다하며 살았던 것에 회의를 느낄 것인지 상상해보라. 5개월 연체한 사람은 1개월 차이로 특혜를 받을 수 없다는 말에 빚을 끝까지 갚아보려고 발버둥쳤던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미울 것인지 헤아려 보라.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도 생각해 보라. 열심히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는 이유로 특혜에서 제외되는 자들의 허탈과 한숨과 분노, 특혜를 받는 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 특혜를 받기 위한 갖가지 술수와 거짓의 횡행, 다음에 있을 특혜를 기다리며 ‘자발적’으로 연체하겠다는 결심 등등. 이런 사회에서 국민통합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국민통합이란 말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진정 살펴봐야 할 것은 정부 스스로가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이 호소는 희망과 건설과 개척의 메시지다. 당시 국민들은 ‘나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내 가족은 내가 책임진다’는 책임감을 갖고 국내외의 산업현장에서 열심히들 뛰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온 사회가 성공과 자립을 향한 열정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국민통합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건설과 개척의 메시지 대신에 ‘가난의 대물림’ ‘대기업의 탐욕’ ‘부익부빈익빈’ 등 절망과 파괴와 안주(安住)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가 도와주겠다’고 하는 만능 복지국가의 신화를 덧씌워간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 부모를 모시고 노후를 대비하는 것, 병들어 치료하는 것, 공부하는 것,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 등등 모두를 사회와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해결해 주겠다고 한다. 국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대신 점점 타인의 주머니에 기생하여 살아가고자 한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정부나 정치권에서 입을 열 때마다 이른바 ‘가진 자’와 대기업들은 ‘이번에는 또 얼마나 뺏겨야 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반면에 이른바 ‘못 가진 자’와 중소기업들은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떡고물이 떨어질 것인가?’를 기대하는 사회에서 통합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있다. 정부와 정치권 스스로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유발자인 셈이다. 유발자 스스로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나서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권추구에 열중하고 권모술수와 각종 편법이 판치는 사회에서 국민통합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국민 모두가 같은 규칙을 따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책임지고자 할 때 국민통합은 이루어진다. 특혜와 특권을 폐지하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정부만이 국민통합을 말할 수 있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전략실장, kwonhc12@gmail.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