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RI 국제정세
미국의 조용하지만 집요한 북한에 대한 압박 작전
1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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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북한을 향한 미국의 압박 작전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드러난 몇 가지 국제상황은 미국이 북한의 현 정권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정권 고사 작전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2010년 8월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수출금지 품목들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망원경ㆍ평면TVㆍ고급 피아노ㆍ만년필을, 유럽연합은 순혈종마ㆍ철갑상어알ㆍ송이버섯ㆍ고급와인을, 일본은 쇠고기와 참치, 호주는 바닷가재를 금지 품목으로 선정했다. 금지 대상 품목의 면면을 보면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해 마치 “이제는 그만 물러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상기 품목의 수입이 금지되어 고통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는 뻔한 일이다.
지난 5월 하순 김정일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측에 무기와 현금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추정되며, 그 결과는 실패였다. 중국이 북한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이 역시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일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라크에선 아직도 전투 중이며, 아프가니스탄에선 확전하고 있고, 오사마 빈 라덴을 계속 추적 중(2011년 5월 1일 사살 발표)이었으며, 리비아의 카다피 때문에 골치를 섞고 있는 중이라 경황이 없을 것이므로 북한 문제는 소홀히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 정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이란 수준으로 확장
5월 하순 미 의회에 제출된 ‘이란ㆍ북한ㆍ시리아 제재 통합법안(Iran, North Korea, and Syria sanctions Consolidation Act of 2011)’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이란에 대한 제재 수준으로 확장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제재법’은 제재 대상이 된 이란의 단체ㆍ기업ㆍ개인과 거래한 외국 기업을 미국의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북한의 금융기관과 거래한 외국 금융기관들은 미국 내에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은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북한 은행과 거래하는 외국의 금융기관들에게 미국과의 거래 혹은 북한과의 거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이란과 같은 방식으로 제재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중국에 대한 경고라고 보아야 한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대북 전략에 실질적으로 협력하지 않았다. 협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훼방꾼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란ㆍ북한ㆍ시리아 제재 통합법안은 더욱 구체적으로 ‘북한에서 채굴되거나 추출된 광물을 구입하는 외국인을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무기 수출 등 자금줄이 차단되고 있는 북한은 최근 중국에 대한 광물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었다. 2010년 북한의 중국에 대한 광물 수출은 8억6천 만 달러 규모에 이르고 있었으며, 2011년 신년 공동사설(신년사)에서 4대 선행 부문 중 1순위로 석탄 개발을 언급해 석탄 등 광물자원의 생산과 수출을 올해 더욱 늘릴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 매체들은 석탄을 ‘주체공업의 식량’이라고 표현하며 석탄 증산을 독려해 왔다.
미국의 새로운 북한 제재 법안은 북한의 2011년 국정 우선순위 과제 하나를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북한의 최대 돈줄을 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중국을 직접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광물 수출의 90% 정도가 중국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모종의 은밀한 화물(미사일 부품으로 추정됨)을 싣고 미얀마로 향하던 북한 선박 라이트호가 미국 구축함 맥켐벨호의 추적을 받다가 결국 항해를 포기하고 북한으로 되돌아간 사건이 6월 12일 발표되었다. 5월 말 중국 상하이 남쪽 해역에서 미얀마로 향하던 북한 선박 라이트호를 뒤쫓았던 미 구축함 맥캠벨호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라 의심 물자를 선적한 라이트호에 대해 검색ㆍ조사를 요청했다. PSI 회원국인 벨리즈(북한 선박이 등록된 국가)가 검색을 허용함에 따라 5월 26일 상하이 남쪽 부근 해역에서 미 해군 구축함 맥캠벨호는 네 차례에 걸쳐 검색을 위해 승선을 요구했지만 라이트호는 거부했다. 미국은 미얀마를 포함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을 상대로 라이트호에 대한 압박에 동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런 과정이 전개되는 동안 라이트호는 공해상에서 표류하다 뱃머리를 돌려 북한으로 향했다. 미국의 정찰기와 위성은 라이트호를 뒤쫓았다.
미국은 6월 13일 독재국가의 주민들이 인터넷에 접속, 세계와 접하게 하는 수단으로 스텔스 인터넷이라는 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독재국가가 통신을 차단해도 우회하여 인터넷과 이동통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북한은 물론 중동에서 불어오는 자유화의 바람에 전전긍긍하는 중국 역시 미국이 추진하는 스텔스 인터넷의 잠재적인 대상국임이 분명하다.
북한이 처한 운명은 라이트호의 무산된 항해와 유사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 중이던 바로 그 기간, 동중국해에서는 북한 선적 화물선이 미국 구축함에 쫓기고 있었다. 북한이 처한 운명은 라이트호의 무산된 항해와 유사하다. 김정일도 라이트호도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도 북한이 어떻게 될지를 마치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쳐다보지만 말고, 북한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cklee@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