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공익을 위한 규제는 정당한가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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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종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오히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혼쭐낸 경우가 있었다. 교통요금 인상규제는 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여전히 서민들은 짐짝 취급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규제가 집행되는 과정에서 원래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에 상반되는 결과를 야기시키는 이러한 현상을 선스타인이라는 경제학자는 「규제의 역설」, 정확히 표현하면 「규제정부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규제의 역설」은 규제대상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잣대로 통제를 가하는 데 원인이 있다.
최근 정치인과 관료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규제완화를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규제를 도입하는 논리도, 규제를 완화하는 논리도 公益public interest을 위하는 것으로 동일하다. 그렇다면 공익은 무엇인가? 규제완화가 과연 공익에 부합되는가? 공익이란 공공성, 일반성을 지니는 불특정 다수인의 이익 또는 사회구성원의 평균적 이익이라고 정의한다. 만일 아담 스미스가 이 시대를 거닐고 있다면, 이러한 공익의 정의에 대해 조소를 보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인과 관료들은 공익이야말로 지고의 선이요, 법으로 믿고 따르고 있다.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수없이 쏟아지는 규제완화도 그 질과 수혜자에 있어서 역설이 존재한다. 규제완화가 단순한 행정서비스의 개선에 머물 경우, 경제구성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쟁을 드높여 소비자에게 이익을 돌린다는 규제완화의 본래 목적은 충족시킬 수 없다. 진입규제, 가격규제와 같은 본원적 규제를 없애고, 공익산업으로 간주되어온 굵직굵직한 산업에 경쟁을 불어 넣어야만「규제완화의 역설」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규제완화의 수혜자 문제도 그렇다. 규제완화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잠재적인 경쟁자나 경쟁력 있는 기업,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규제완화는 이미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을 치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다. 적어도 규제완화가 역설에 빠지지 않는 세상이라면, 현존하는 기업들은 행정서비스 개선과 같은 단편적인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경쟁의 마당에서 한판 승부를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앞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