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최근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논의에 대하여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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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2금융권에 대한 규제강화 논의가 시작되면서 또 다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관한 해묵은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를 위한 Task-Force를 구성하여 금융회사 보유 자기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제한, 대주주 및 계열사에 대한 자산운용규제 강화, 대주주 및 주요 출자자 자격요건제도 강화,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 등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올 연말까지 마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제2금융권에 있어서의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문제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 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단골메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때마다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도입되어 산업자본의 금융 사금고화를 방지해 왔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로는 김대중 정부 때 마련된 「제2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건전성 강화」방안을 기초로 하여 지속적인 제도개선이 추진되어 왔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제도, 준법감시인 제도 등의 제도가 도입되었고 그 외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및 대주주와의 거래에 대한 감독도 강화되어 왔다.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추진된 제도들은 시장규율 제고와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를 위한 감시ㆍ감독체계의 구축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규제방안들이 사전적 규제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감독당국으로서는 사전적 규제를 통해 감독의 수월성은 확보할 수 있겠지만 과연 이러한 방향으로의 규제강화가 가뜩이나 낙후된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우선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를 위한 여러 규제를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산업자본의 제2금융권에 있어서의 소유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인식의 출발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거 정부의 은행지배로 인해 은행을 통한 자생적 금융자본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기업집단의 제2금융권 진출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이와 같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소유를 인위적으로 해소하려고 한다면 재산권 침해, 국내자본의 역차별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제2금융권 소유에 있어 산업자본을 대신할 수 있는 국내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의 소유제한은 결국 외국자본의 금융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외국자본의 국내은행 지배력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고 금융겸업화로 인한 은행의 비은행업무 진출이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제2금융권에서마저 국내자본에 대한 소유제한은 결국 금융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논의 중인 규제방안들은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사금고화에 따른 이해상충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이해상충의 문제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자본이 아니더라도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대주주 또는 주주간의 담합 등이 존재하는 한 이해상충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며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소유제한 및 소유에 따른 권리제한은 이해상충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한편으로는 소유의 자유와 이에 따른 권리를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금융기관에 있어서 이해상충의 문제는 철저한 금융감독, 시장규율의 제고, 그리고 내부통제 시스템의 강화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현재 운용중인 법적ㆍ제도적 장치의 효율적 활용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운용 중인 여러 제도적 장치의 실효성을 강화함으로써 이해상충의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므로 추가적 규제는 과잉규제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현재의 규제수준도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엄격하여 금융의 자율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상황이며 여기에 또 다시 엄격한 사전적 규제의 추가는 사후적 감독기능의 발달을 막아 금융감독의 국제적 수준으로의 도약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넷째, 금융관련 정책은 금융의 자율화 및 업무영역의 확대라는 세계적 추세에 걸맞게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금융에 있어 세계적 추세는 규제완화를 통한 금융 자율화의 확대이며 이를 통해 포지티브(positive) 시스템에서 네거티브(negative)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은 사후적 감독강화 및 시장규율을 통해 방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금의 칸막이식 금융법 체계에서 탈피하여 네거티브 시스템 중심의 금융법 개편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추가적 사전적 규제의 강화는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오히려 잦은 법개정으로 인해 정책의 신뢰성마저 훼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제2금융권을 대상으로 새로이 논의되는 각종 규제들은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재벌의 경제력집중 방지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금융기관을 소유하는 자본의 성격에 집착하여 규제정책을 도입하다가는 오히려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금융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사실 대기업집단 소속의 금융기관들이 오히려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온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집단계열 금융회사의 시장지배력 확장은 상대적으로 경쟁력과 안정성을 확보한 대기업집단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투자자의 선호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이제는 금융정책의 무게중심을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두고 사전적 규제를 완화하여 금융산업의 역동성을 제고하는 한편 사후 감독기능은 강화하여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의 정책전환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