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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재벌정책의 변천과정과 향후 과제

08. 4. 14.

2

황인학

높아가는 재벌규제 수위


재벌로 불리는 ‘한국형 대규모 기업집단’은 우리나라 산업조직의 대표적 특징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그러나 재벌의 조직, 구조, 기능에 대한 실증적 이해기반은 아직도 취약한 상황이다. 물론 재벌은 국민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비판적) 관심의 대상이었고 정부는 재벌, 특히 30대 기업집단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우려하는 여론에 기초하여 1987년 이후 공정거래법을 중심으로 매년 재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공정거래법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을 중심으로 재벌정책의 변천과정을 요약한 <표 1>에서 엿볼 수 있다. 즉 1987년 공정거래법 제2차 개정에서 포괄적인 의미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할 목적으로 지주회사의 설립 및 전환 금지, 상호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규제조항을 신설한 것이 본격적인 재벌정책의 시발점이었는바, 그 이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부는 재벌정책의 목표를 구체화하고 규제수단을 추가 또는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벌규제의 폭과 수위를 높여왔음을 <표 1>은 보여주고 있다.

<표 1> 대기업집단 규제의 변천 과정

규제논거의 문제점과 정책의 시간 비일관성


그러나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기업정책의 근간으로 뿌리내린 ‘경제력집중억제’ 목표는 충분한 실증적, 논리적 검증절차 없이 막연한 우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돌이켜 보면 경제력집중, 그 중에서 특히 재벌정책의 핵심대상인 일반집중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고 보는 신고전파 경제학자의 니르바나 접근방식(Nirvana approach)의 심대한 영향과 더불어 재벌의 존재로 인해 우리나라의 경제력집중은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수준일 것이라는 예단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벌은 그 어마어마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경쟁상대인 다른 나라의 초국적기업에 비해 규모가 초라하여 우리의 일반집중 수준이 특별히 정책관리해야 할 만큼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경제력집중 억제는 경쟁촉진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정책목표이며 개방경쟁 환경 하에서 정부가 좀더 역점을 둘 사안은 경쟁촉진이라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경제력집중억제에 편향된 우리나라 대기업정책의 패러다임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표 1>은 시대별로 재벌정책의 목표가 서로 모순되는 현상, 즉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책의 비일관성 문제(time-inconsistency problem)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경제력집중을 억제한다며 지주회사 설립을 오랫동안 금지하더니 이제는 소유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지주회사가 재벌체제의 바람직한 대안이라며 공정위가 앞장서 강조하는 부분, 그리고 지배주주 주식의 소유분산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다가 지금에 와서는 재벌문제의 핵심은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을 가지고 지배권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는 데 있다며 의결권 승수(지배권과 의결권의 괴리)를 일정 수준까지 낮추면 대표적인 재벌규제수단으로 알려진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면해주겠다는 부분 등은 정책 비일관성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객관적 사실분석에 기초, 정책방향의 재고가 필요


위와 같이 재벌규제 논거의 빗나감, 정책의 시간 비일관성 문제는 재벌의 핵심쟁점에 대한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실증연구가 미흡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기업은 국부와 고용창출의 주역이며, 특히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은 부분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부와 고용창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논의나 정책적 접근은 당연히 좀더 신중하고 체계적인 사실분석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에 발표된 ‘시장개혁 로드맵(안)’에 포함됨으로써 논란이 되고 있는 지배주주 의결권 승수의 정책활용 방안은 그 타당성을 좀더 검증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는 흔히 ‘Controlling Minority Structure(CMS)'로 불리며, Bebchuk-Kraakman-Triantis(1999), 그리고 Morck-Strangeland-Yeung(1998)은 CMS가 지배주주와 외부 투자자 사이에 대리문제(agency problem)를 악화시키고 기업가치를 훼손할 개연성이 높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바, 출자총액규제의 졸업규정으로 '의결권승수‘를 활용하겠다고 하는 ’시장개혁 로드맵(안)‘의 내용은 이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배주주는 부채(은행대출)에 대해 최종적인 보증을 서는 한편 ’사실상의 업무지시자‘로 경영상 책임까지 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 학자들이 주장하는 가설들이 우리나라에서는 통계적으로 뒷받침되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게다가 주식을 소유하지 않는 (전문) 경영인 그룹에게는 이러한 조건을 부과하지 않고 있음은 전문경영인 그룹이 지배주주가 작용하는 그룹보다 경영성과나 자원배분효율 면에서 탁월하다는 전제 때문일 터인데 이 또한 사실일지는 정책입안에 앞서 검증되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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