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캐롤 송이 사라진 성탄절에 즈음하여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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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근
금년 내내 상인들은 장사가 너무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유통시장 개방 이후 급성장을 거듭하던 대형할인점들도 출혈경쟁을 불사하고 있다. 백화점에선 세일은 있어도 매출은 오히려 줄고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이맘때 거리를 울려 퍼지던 캐롤 송 조차도 잘 들을 수 없어, 우리의 마음마저도 얼어붙은 듯하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서비스업활동 동향”을 보면, 도·소매업이 9월 -2.5%의 감소에 이어 10월에도 -1.2%의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종합소매업이나 음식료업 및 담배소매업의 판매가 부진한 가운데, 자동차판매업은 두 자릿수의 감소세를 지속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요즘 직장인들은 점심식사도 하지 않느냐”는 식당 아줌마의 하소연을 반증하듯 식당업, 주점업, 제과점업 등 음식점업의 매출도 9월에 -3.7%, 10월에도 -3.5%의 감소를 지속하고 있어 먹는데 지출하는 비용조차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세탁업과 욕탕업의 매출도 10월에 -8.0%와 -8.7% 각각 감소하고 있는데, 목욕이나 세탁마저도 일종의 사치(?)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나오듯이, 소비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득이다. 소득은 일해서 벌어들이는 근로소득과 부동산, 주식, 채권, 예금 등을 통한 자산소득으로 나뉜다. 자산소득의 경우, 최근 주가가 오르곤 있지만 이것은 외국인 투자자의 몫이고 올해에 나타난 부동산가격의 급격한 상승도 일부 계층의 소득인 듯하다.
개개인 근로소득의 증감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우리 경제 전체의 근로소득은 취업자수가 많을수록 늘어나는 법인데, 올해 고용사정은 매우 좋지 않다. 지난 4월부터 감소세를 지속하던 취업자수가 10월 들어 전년동월비로는 겨우 0.2% 증가했지만 전월비로는 -0.1%, 즉 2만7천명의 취업자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 초중반의 안정적인 전체 실업률은 구직단념자의 증가로 인해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해서 나타난 수치적인 현상일 뿐이다. 더욱이 최근의 노사관계 악화나 저조한 기업채용전망 등을 고려할 때 내년에도 고용사정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민간소비가 꽁꽁 얼어붙은 데는 자산소득이나 근로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 반면에 가계 빚만 오히려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에 돈을 쓰려 해도 벌어 놓은 돈도 없고 기대소득도 적으며 돈 빌릴 곳도 마땅치 않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가계신용 동향”에 따르면,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가계대출과 물품을 외상으로 구입한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신용 잔액이 금년 3/4분기 중 전분기에 비해 8,613억원이 증가한 440조원으로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말 175조원의 약 2.5배 수준이다. 이처럼 외환위기 당시보다 요즘 가계부채가 훨씬 많기 때문에, 요즘 생활이 IMF 위기 당시보다 어렵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경기침체로 인한 근로소득 감소 등으로 가계신용 연체율이나 가계 채무부담이 확연하게 개선되기 어려워 신용불량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30만원이상 3개월이상 연체한 개인 신용불량자들이 10월말 현재 360만명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4개 이상의 신용카드를 소지한 988만명중에 이른 바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이 약 100만명 수준이고, 30만원이상 1개월이상 연체자인 잠재 신용불량자들도 6월말 현재 108만9천명이나 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올해 우리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은 민간소비 위축이 내년에도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새해에는 어떠한 정책들이 필요한가?
우선 새해에 내수회복의 조짐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정부는 강력한 경기진작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고용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적극적인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만약 내년 상반기에도 내수회복이 계속 부진할 경우 향후 물가상승압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정책금리의 추가인하와 함께, 금년과 같이 재정의 상반기 조기집행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며 균형재정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고 필요시 적자재정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출호조세가 폭 넓은 경기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경제주체의 심리회복이 매우 중요하므로 경제주체의 심리위축을 조장하는 지정학적, 사회적, 정치적 불안요인들을 해소하는 동시에 경제주체들의 ‘일하고자 하는 의지’, 소비 및 투자 심리, 자신감 등이 회복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섣부르게 장밋빛으로 내년 경기를 전망하기 보다는 아직은 경기회복을 향한 내수침체의 긴 터널을 좀 더 지나가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