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전문가 칼럼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잘못된 인식

08. 4. 30.

0

한현옥

며칠 전 정부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안을 발표했다. 이 안은 시장의 자율적 감시기능 강화를 그 기본 방향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자율감시기능 강화라는 기본 방향이 무색할 정도로 그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 대부분이 기업에 대한 규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룹별로 실시되어온 대규모 부당내부거래 직권조사 방식을 가급적 지양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전적이고 투망식으로 이루어진 부당내부거래 조사 방식은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마땅했겠지만 이제라도 조사방식을 바꾸기로 했다니 다행스럽다. 그러나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있어서 여전히 우려되는 것은 내부거래의 부당성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관심내지 우려 수준은 아주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내부거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지난 번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 발표 직후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경제학을 전공한 모 대학 교수가 부당내부거래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교수는 시장거래조건과 다른 거래조건으로 이루어지는 계열사간 거래가 부당내부거래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 교수의 정의에 따른다면 본질적으로 모든 내부거래는 부당내부거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수한 관계에 있는 계열사와 그렇지 않은 비계열사와 거래할 때 거래조건이 다르다면 그 차이 자체를 부당하다고 보아야 하는가? 경제원론만 수강한 학생이라도 동일한 재화의 가격이 항상 똑같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 구매자의 특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것과 동일한 생수 한병을 산꼭대기에서 살 때 다른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 돈을 빌려주는 경우에도 돈을 빌리고자 하는 기업의 영업상태, 미래성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불확실성이 높다면 그에 따른 위험부담 때문에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높은 이자를 요구할 것이다. 계열사와 비계열사를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계열사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고 더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부담은 비계열사의 경우보다 일반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고려한다면 계열사와의 거래조건이 비계열사와의 거래조건과 반드시 동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즉 내부거래와 시장거래 조건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내부거래가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현행 공정거래법도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지는 자금이나 자산, 인력의 거래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내부거래를 부당내부거래로 정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사지침에서 여러 가지 부당성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내부거래를 통해 지원을 받은 기업이 특정 시장에서 유력한 사업자의 지위를 형성하거나 강화할 우려가 있는지, 경쟁사업자가 배제될 우려가 있는지, 신규진입이 저해될 수 있는지 등이 부당성을 판정할 때 고려되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특정 내부거래가 다른 사업자나 특정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부당성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시장거래조건과 다르게 이루어지는 계열사간 거래를 모두 부당내부거래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에는 공정위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된다.


과거의 조사결과뿐만 아니라 최근에 발표된 조사결과를 보아도 왜 적발된 행위가 부당내부거래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즉 해당 내부거래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분석내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정상적인 거래조건(시장거래조건)과 다른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을 밝히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내부거래의 부당성을 판정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내부거래와 부당내부거래를 동일시하고 있다. 또한 계열사와의 거래이든, 비계열사와 거래든 그 거래의 특성을 무시한 채 무조건 모든 거래가 동일한 조건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켜 왔다. 이제는 시장거래 조건과 다른 조건으로 이루어진 내부거래가 곧 부당내부거래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이후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있어 부당내부거래와 정상적인 내부거래가 구분될 수 있도록 내부거래의 부당성 판정시 이에 대한 충분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