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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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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유감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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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근

지난 8월 12일 한국은행은 정책금리인 콜금리를 3.75%에서 3.5%로 0.25% 포인트를 전격 인하했다. 일단 주가가 오르면서 금융시장의 반응은 좋았지만, 콜금리 인하의 향후 효과에 대해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통화정책의 효과 여부를 떠나 이번 콜금리 인하에 대해 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걸까?


한국은행이 1998년부터 채택한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는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결정한 물가안정목표를 국민에게 공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통화정책의 운영체제다. 금년부터는 연간 물가안정목표를 중기 물가안정목표로 변경해서 2004년~2006년의 물가안정목표를 2.5%~3.5%로 설정했다.


그 목표기간의 변경 이유에 대해 한국은행은 매년 물가목표 달성에 집착하여 보다 강도 높은 통화정책수단을 사용하게 되면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순환주기가 3년 1개월에서 3년 6개월로 추정되고 있으며, 통화정책의 파급기간이 통상 1~2년인 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기 물가안정목표가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이기 때문에 어느 한 해 물가수준이 중기 물가안정목표 범위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3년 평균이 그 범위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률이 첫 해는 1%, 둘째 해는 4%, 마지막 셋째 해가 5%라서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이 3.3%가 된다면 2.5%~3.5%의 중기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그 결과 당해연도에 물가안정을 달성하지 못할 지라도 한국은행으로선 큰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1998년과 1999년과 같이 한국은행이 스스로 설정한 연간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어도 그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다. 1990년에 세계 최초로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뉴질랜드에서는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중앙은행의 총재는 해임을 요구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한국은행 총재가 송구할 따름이라고 밝히기 만해도 고마울 뿐이다.


다음으로 한국은행의 물가목표대상은 2000년부터는 소비자물가가 아니라 근원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이다. 근원인플레이션은 곡물 이외의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소비자물가의 상승률을 뜻한다. 물가목표대상의 변경사유는 농축수산물이나 석유류 가격 등과 같은 비통화적 요인에 의해 물가가 일시적으로 변동하는 것을 통화정책으로는 통제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의 상승처럼 총수요압력이 높아져서 생긴 물가상승이 아니라 비용측면의 물가상승인 경우, 한국은행이 유가상승을 전혀 통제할 수 없고 정책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유가를 안정시킬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주장은 외견상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한국은행의 물가목표대상지표가 근원인플레이션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더욱이 물가목표대상지표로 근원인플레이션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 23개국 중에 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불과 2개국뿐이다.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소비자물가를 대상지표로 삼는 것은 물가안정의 목표대상으로 중앙은행이 통제하기 쉬운 지표보다는 국민들이 보다 밀접하게 체감하고 있는 지표가 바람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편 한국은행법 제1장 제1조에는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국은행의 목적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한국은행의 단일화된 목표는 물가안정이다. 하지만 이번 콜금리 인하를 두고 한국은행의 박승 총재는 “물가보다는 경기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그 이유를 당당하게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의 최우선 과제가 물가안정에서 경기문제로 바뀌었단 말인가? 또는 물가는 걱정이 없고 한국은행의 여력이 남기 때문에 경기도 챙겨야겠다고 판단했을까?


지난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로 4.4%, 6월에 비해 0.6% 상승했고, 근원인플레이션도 전월에 비해 0.3%나 상승했다. 어차피 그럴 바에는 4~6월 중에 콜금리를 인하했다면, 물가의 부담이 적은 상황에서 경기를 고려했다는 주장이 다소 설득력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물가상승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한국은행이 물가를 희생할지라도 경기회복에 노력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이 물가와 고용(성장)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화정책의 목표를 세우고 이에 부합하는 통화정책의 운영체제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겠다면, 국민들의 체감물가에 보다 가까운 소비자물가를 대상지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중기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겠다면, 3년 중에 2년이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고 한국은행의 총재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물가안정목표제도는 외환위기 직후 서둘러 채택한 면이 없지 않다. 이제는 한국은행 정책의 목표와 집행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합리한 점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우리 실정에 적합한 한국은행법으로의 개정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될 시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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