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올바른 상황인식과 2005년 정책과제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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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국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 경제 활력 침하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잦은 경기 부침을 겪어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과정을 내실을 다지기 위한 불가피한 조정기라고 설명하면서 조정이 제대로 되면 경제가 저절로 활발해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진행된 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분야나 다른 산업분야에서 활발한 창업과 고용증대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대했던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조짐이 없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정부정책의 기본방향은 분배개선, 복지확대 등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느낌이다. 이런 움직임은 단기적으로 경기악화로 생활이 어려워진 계층을 지원하는 차원 이상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는 최근 소위 ‘유럽식 모델’에 대한 공허한 논의가 재개되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견 복지체제를 제대로 구축하면 북유럽 국가와 같은 강소국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말해 분배·복지개선은 투자보다 소비를 키우는 일이다. 대부분 북유럽 국가들은 인구가 적기 때문에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극소수의 기업만 있으면 여유로운 복지사회를 시현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잉여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은 이들보다 개인당 소득이 낮고 인구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 물론 생계유지를 위한 공적 보조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수준은 우리의 경제력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잉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경향이 왜 연말 각종 언론매체의 경제전망관련 보도가 온통 잿빛인가와 무관하지 않다. 이하에서는 복지 제공능력 향상을 위해서도 단기적인 경기회복과 중장기적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몇 가지 정책과제를 생각해본다.
확장적 거시경제 정책의 차질없는 추진
내년에 예상되는 수출둔화 등 위험요인에 대비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의 일관성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 결정된 재정지출 확대가 차질없이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고용창출, 생산성 향상 등 성장잠재력 확충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지출이 늘도록 해야 한다. 조세정책은 소득세율의 추가인하와 특소세 대상의 대폭 축소 등을 통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유가안정, 환율하락 등 물가상승요인이 완화되고 있어 추가 금리인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단 환율안정화를 위한 개입은 최소한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최근의 환율불안은 정부의 인위적인 환율안정 노력으로 외환실수요자와 시장의 면역력이 극도로 낮은 상황에서 약달러 추세라는 강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위안화 절상시까지는 환율안정화 노력이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각종 불안·갈등요인 해소를 통한 경제심리 회생
국보법 폐지 등 4대 입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극한대립 비정규직 문제, 공무원 노조 등과 관련한 과격한 집단행동, 북핵문제와 관련한 한미공조체계의 약화 등 정치·사회적 갈등 요인들을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 이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초래해 직접적인 경제요인 이상으로 경제심리 위축을 조장함으로써 경제회복과 민생안정에 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질서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 현 정부의 제일 중요한 정책초점이라고 여겨지면, 구체적인 반시장적 경제정책이 추진되지 않았더라도 정책의 의도나 정체성에 대한 경제주체의 불안심리가 고조될 수 있다.
고소득 및 사회 지도층을 경원시하는 사회분위기는 기본적인 경제활력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노력에 의존하여 그 위치에 달한 부유층 및 사회지도층에 대해서는 사회가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가 되어야만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경제가 활성화되고 모두에게 소득증대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왜곡된 反기득권층 분위기를 쇄신하지는 못할망정 방치·조장하려 한다면 경제활력은 더 빠른 속도로 소진될 것이다.
기업들이 느끼는 경영권에 대한 잠재적 위협도 현존 대주주들에게는 중요한 불안요인이며 동시에 투자확대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에서 공적 연기금 투자의 의결권 행사라는 소위 ‘백기사’ 역할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런 ‘백기사’는 옷만 갈아입으면 언제든지 ‘흑기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경영권 보호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한국기업 역차별 등과 같은 관련 당사자들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해소함으로써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노후소득 보전을 약속하여 국민들에게 강제저축을 하게 하는 계약이다. 당연히 안정성 보장과 수익률 제고가 지상목표가 되어야 하며 정부의 對기업정책의 수단이 되거나 도덕률을 강요하는 수단이 아니다. 순전히 의결권 고려 때문에 특정 주식을 매입·매도한다면 이는 기본적인 계약 위반이 될 것이다.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노사관계의 확고한 정립
금년 夏鬪, 冬鬪 등의 분쟁에서 정부가 보여준 중립적인 입장은 노동시장의 안정과 발전, 법치주의 확립 등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노사관계는 일회성이 아닌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전공노의 불법파업에 대한 사후 처리결과는 향후 노사문제에 대한 정부의 법과 원칙의 존중의지를 평가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