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남발되는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의 육성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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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록
참여정부에서는 경제와 관련된 정책이 수없이 탄생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정책당국에 의해 제기된 정책 또는 정책방향은 동북아 중심국가의 달성, 동북아 경제중심의 달성, 동북아 화해협력의 달성, 국민소득 2만불 달성,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의 육성, 수십만 일자리의 창출, 동반성장의 달성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 중 특히 남발되고 있는 것은 일자리 창출,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의 육성이란 이름 하에 정부부처별로 다양하게, 끈질기게 제시되고 있는 의욕적 정책들이다. 소위 몇 년간 수백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거시목표에서부터 여성인력 수십만 일자리 창출, 노인일자리 수만명 창출, 정보통신분야에서 수십만 일자리 창출 등 수많은 일자리 창출계획이 경제전반에 대한 종합적 검토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검토없이 앵무새 소리처럼 남발되었다. 아마 지금까지 제시된 모든 일자리 창출목표가 달성된다면 수십 퍼센트에 이르는 경제성장이 가능해지고 유사 이래 가장 호황을 맞이할 수 있었을 터인데 실물경제는 이런 정책목표와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은 원래 10개 분야, 80여개 기술의 선정을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의 연구와 토론, 해외 유명인사 초청 세미나의 개최와 같은 야단법석을 통해 확정되고 추진된 것이다. 이를 확정하는 과정에는 외견상 관련부처간의 협의와 협력이 활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산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상을 배분하고, 도저히 합의를 이루지 못한 분야는 민주적(?)인 투표방식을 통해 확정했다. 당연히 정책의 추진을 위해 역량을 총집결하여 추진한다는 행동강령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잇달아 새로운 이름의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원래의 계획이 유야무야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에는 "대형국가개발 실용화 사업"이란 이름의 또 다른 성장동력 산업이 발표되고 있다. 이어서 보다 최근에는 "부품소재산업의 육성"이란 또 다른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젠 일자리 창출에 이어서 넘쳐나는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 때문에 불가피하게 수십 퍼센트의 경제성장을 해야만 하는 즐거운 비명이 나올 지경이다.
이런 정책들이 갖는 특징을 요약하면 여러 가지 매력적인 이름으로 제시되는 다양성, 본질적으로 유사한 정책이 새로운 이름으로 제시되는 가변성과 중첩성을 가지고 있다. 정책의 추진과정이 제대로 체크되지 않으면서 여러 정책이 제시되다 보니 구호성이 강하다. 그리고 장기적인 경제문제 해결을 매력적인 정책용어로 포장하다 보니 당장의 경제문제보다는 중장기적인 경제문제를 언급하게 되므로 미래형, 기반조성형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실현가능성을 어렵게 평가하는 이런 정책이 남발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바람직한 대책은 무엇일까? 우선 산업정책을 줄곳 행사하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일본 산업의 성공에 있어서도 산업정책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경제규모나 정책수단으로 볼 때 정부의 산업정책이 산업을 육성하는 리더(leader)로서 역할을 하기보다는 추종자(follower)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산업정책은 지속적으로 모색되고 추진되고,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가령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이 추진되는 과정을 보자. 10개 산업, 80여개 기술은 어떻게 선정되었을까? 연구와 분석의 산물이라기보다 대기업들이 이미 착수하고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다. 2008년까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에 투입할 예산은 3조원, 이중 절반은 이미 수행하고 있던 사업을 포함시킨 것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새로 투입예정인 예산이다. 이 예산을 두고 관련부처들이 열심히 관할싸움을 한 것이다. 사업추진과정에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매칭펀드가 1조 8천억 정도 예상되고 있다. 이 정도의 자금투입에 10개 분야 80개 기술이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될 수 있을까? 삼성그룹의 2005년 투자액 21조 2,000억원 가운데 연구개발(R&D) 투자는 7조 3,000억원이다. 반도체, LCD, 휴대폰 등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주력제품의 '월드 베스트'화를 추진하기 위한 투자규모임에 비추어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의 육성을 위한 예산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이 부담없이 추진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이 분야에 대해 관련기업들이 14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면 정부의 산업정책과 관련없이 이미 기업들은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선정하여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분야이다. 정부의 육성정책과 관련없이 제갈길 가는 사업이요, 성공가능성이 높은 분야인 것이다.
산업정책의 진행과정을 보자. 정부부처에 의해 관련계획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 다음은 기업에게 애걸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실제 많은 대기업들은 정부정책의 수행과정에 사업자로 참여하는데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얼마 안되는 정책자금이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여러 가지 부수적인 업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어쨌든 산업정책이 입안되면 주로 주관사업자로 대기업이 선정되고 정부정책에 적극 협조하기를 강요받으니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의 중소기업을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정책자금의 회수와 관련해서는 중소기업이 부담해야할 자금을 주관사업자인 대기업이 회수해서 갚아야 하니 결국 대기업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중소기업은 참여하더라도 지적재산권을 보장받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기가 개발한 기술을 다시 사와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유인이 부족하다. 이것이 바로 산업정책의 추진과정에서 생기는 숨겨진 모습들이다.
이런 산업정책의 추진에 있어서 정부부처가 누릴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우선 기업이 오랜 고민 끝에 준비하고 투자하는 분야를 산업정책 대상으로 정하게 되니 위험부담이 없다. 얼마 안되는 정책자금을 동원하고 성공적인 산업발전을 이룩했다는 공적에 거의 무임승차할 수 있으니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부서나 담당자는 생색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능성 있는 산업분야에 가능성 있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끌어드리니 땅 짚고 헤엄치기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을 주사업자로 하여 중소기업을 포함시키니 취약한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의 효과이다. 정책자금 회수에 있어서도 가능성 있는 분야를 선정하고, 주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더욱이 자금회수는 대기업이 한꺼번에 모아서 회수해주니 빚 독촉할 필요가 없다. 산업정책으로서 구호성 약발이 떨어지면 새로운 산업정책의 이름으로 깃발을 바꾸면 된다. 그리고 이 깃발아래 헤쳐모이면 새로운 생색내기를 다시 할 수 있다. 그래도 안될 경우 어떻게 하면 될까? 동북아경제중심기초여건, 국민소득 2만불 달성(별로 의미없는 정책목표이지만)의 초석과 같은 소위 기초여건을 마련하였다고 하면 된다. 실제 동북아중심이 되느냐, 2만불 달성 이 되었는냐는 현재의 담당자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기초여건을 마련해 놓았는데 이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다음 정권, 다음 담당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귀신같은 계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기묘한 계략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다(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그렇다면 이젠 산업정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개발경제시대에 산업정책은 한국의 고도성장에 기여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산업정책이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우리 경제에 더 이상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역할이 국가비젼의 제시,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 인력양성, 규제완화, 노사관계의 개선과 같은 그야말로 기초여건의 개선에 한정할 때가 되었다고 하겠다. 한국의 산업정책, 이제 그 동안의 성과에 만족하고 물러섬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