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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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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기업은 투명할수록 좋은가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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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규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투명경영’이 경제계의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에서는 분식회계, 허위공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등 기업 경영의 투명성 부족이 외환위기를 일으킨 주범이거나 최소한 외환위기를 심화시킨 요인으로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회계제도를 국제 수준으로 높이고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등 강도 높은 제도개혁을 추진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시장개혁의 일환으로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의 지분구조까지 공개한 바 있다.

이런 조치들은 기업의 경영 활동과 관련된 정보의 공개 또는 공유를 통해 우량기업에 대한 투자자금 유입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또 기업에 대한 시장의 감시 기능을 높여 기업 경영 효율화를 유도하는 순기능도 있다. 기업지배구조의 문제가 기업과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경영 투명성 제고는 이러한 비대칭을 해소함으로써 자원 배분을 개선하고 기업의 효율성을 제고하여 건전한 경제성장을 촉진하게 된다.


경영 투명성 높이는 데는 긍정적


그러나 세상사라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이 의도된 대로만 진행되지도 않는다. 이른바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 quences)’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투명 경영을 위한 제도 개혁의 경우에도 뜻하지 않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다. 기업들이 증시 상장을 기피하고 이미 상장된 기업들이 상장을 폐지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위원회에 따르면 2004년 말 현재 외국계 기업에 인수된 뒤 자진해서 주식시장을 떠난 기업만도 14개 사에 이르고 있다. 그 외에 상장 폐지를 추진 중인 기업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라리 비공개 기업이 되어 회사의 경영 실적과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 주주나 애널리스트 등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불만의 소리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총수 및 친인척의 지분 보유 내역을 계열사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공개했기 때문이다. 소버린의 SK㈜에 대한 경영간섭에서 보듯이 국내 기업들은 적대적 M&A 위협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세한 지분구조 공개는 외국계 펀드의 국내 기업 사냥을 돕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투명성 제고에 따른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04년 중 나스닥에 등록된 10개 외국기업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2개 외국기업이 강화된 회계기준에 부담을 느껴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회계 기준을 강화한 ‘사베인스 옥슬리법’이 2005년부터는 외국기업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새로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은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법을 준수하기 위한 회계비용과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과도한 투명성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연구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가령 미국이 자랑하는 헤지펀드들의 경쟁력과 이윤의 원천은 기본적으로 투자 전략의 불투명성에 있는데 공시규정 강화에 따른 과도한 정보노출이 이들 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과잉 정보는 투기를 조장해 시장 변동성을 높이고, 공시를 강화한 기업들은 더욱 심한 주가 변동을 겪는다는 연구도 있다. 즉 공시규정 강화는 단기 투자자를 양산하고 장기 투자자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주가 변동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공시규정과 관련해 최근 흥미 있는 연구가 발표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00년 10월 공정공시 규정(Regulation Fair Disclosure)을 제정한 바 있다. 소수의 애널리스트와 기관투자가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 공시를 금지해 정보로부터 소외되기 쉬운 소규모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규정이 시행된 뒤 기업과 투자가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오히려 냉각됐고, 양자 간 정보 교환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중소기업들은 이 규정 때문에 새로운 정보 채널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자본 조달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소규모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엉뚱하게도 중소기업의 부담을 키운 것이다.


한편, 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하면 기업 가치가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다. 기업 가치는 유리한 정보보다 불리한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경영 투명성이 제고될수록 기업은 더욱 위험을 회피하게 되고 경영을 더 보수적으로 하게 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수익성 있는 투자 사업에 대해서도 망설이거나 포기하게 되고, 이런 경향은 기업 이미지가 중요한 첨단기술 산업에서 특히 심할 것이다. 투명성 제고가 결국 투자를 위축시키고 역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기업 가치 하락할 수도”


결론적으로 경영 투명성 제고는 자원 배분 효율화와 시장 감시기능 제고를 위해 필요하지만, 그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비용이 수반될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 경영도 무조건 투명할수록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적정 투명성’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이 수준을 넘어 과도한 투명 경영을 강요한다면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리게 되고 투자를 기피하게 되며, 결국 자본시장에 남아 있는 기업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맑은 물에서 고기를 찾아보기 어렵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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