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공정위의 기능 재정립을 위한 제언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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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권
공정위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시장의 경쟁과정을 보호하고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기능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정위는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시장경제를 꽃 피우는 첨병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감시하는 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서 공정위의 기능과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공정위의 경쟁촉진이라는 본연의 역할과 거리가 있는 경제력집중 억제 관련 규제들이 1987년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제도화 되었다. 계열사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한도 설정, 지주회사설립 규제, 출자총액제한, 계열사간 내부거래 규제, 보험금융사 의결권 제한 등이 그것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 효율성과 사회후생 증대를 위해 기업결합심사, 부당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일관되고, 합리적인 심사 및 규제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채,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에 집중되어 시장경제 주창자로서 본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주요 선진국의 경쟁정책 당국의 시장 경쟁촉진이라는 정상적인 기능과는 달리 한국의 공정위는 경제력집중억제라는 취지하에 기업의 고유선택 영역인 경영전략에 해당하는 부문에 개입하여 왔다. 공정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출자규제의 논거로 한국의 독특한 순환출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만 중층적 피라미드식 출자를 통한 지배는 유럽국가에서도 다수 발견된다. 출자규제는 출자한도의 변경, 폐지, 재도입 등 시류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하며 진화되어 왔다. 과거 출자규제의 목적은 기업의 과도한 사업다각화 및 경제력집중 억제였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으로 변경되었다. 공정위는 동일한 법내용을 가지고 시대에 따라 법해석을 달리하며 규제의 목적을 바꿔 왔다.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규제내용들은 소비자 보호 및 시장의 경쟁과정을 보호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공정위의 본연의 역할에 벗어나 있다.
글로벌 경제화로 세계시장 단일화가 가속화되는 등 공정거래위원회 출범 및 1987년 공정거래법 개정 당시와는 경제환경이 많이 변화되었으며, 국내 기업의 활동범위도 세계의 유수기업과 경쟁하는 국제시장이고, 경쟁제한행위도 개별국가의 범위를 넘어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되는 시점이므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공정위는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정책은 상법, 증권거래법, 회계제도, 공시제도 및 자본시장의 규율에 위임하고 상품시장의 경쟁촉진에 집중하여야 한다. 즉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에서 벗어나 개별 상품시장 단위에서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기업행태에 대한 규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공정거래법이 지향하는 목표를 시장개방과 경제선진화에 걸맞게 경쟁촉진으로 일원화하여 법이 목표로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경쟁당국의 경제분석 능력 제고와 법의 집행력 강화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공정거래정책을 통해서 시행되어 왔던 기업집단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와 제한을 완화하고 다른 시장규율 메커니즘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반면에 기업결합심사, 부당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경쟁정책은 보다 강화되고 정밀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공정위가 사법기능과 정책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법무부 독점금지국이나 연방거래위원회와 같이 공정거래법이나 산업조직론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대폭 충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위원회가 합의제 기관으로서 설립취지에 충실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위원 상호간은 물론 행정부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의 임명과정에서 국회의 동의나 추천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