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돈을 왜 사용하는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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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선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돈이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거래에는 항시 돈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왜 돈을 거래에 사용할까? 돈은 다른 어떠한 물건이나 서비스보다도 거래에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사용된다.
원시시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살았다. 그들은 열매를 따먹거나 짐승을 사냥해서 먹거리를 마련하였다. 또 나뭇잎이나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추위나 더위로부터 아니면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였다. 땅을 파서 움집을 짓고 거기서 맹수나 추위와 더위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이러한 자급자족경제에서는 모든 필요한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교환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 중에는 열매만 채취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냥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급자족 상태에서는 항상 사냥하는 사람은 고기만 먹고 열매를 채취하는 사람은 열매만 먹어야 하였다. 또 설사 고기나 열매를 많이 생산한다 하여도 내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일정한 시간에 일정량 이상을 먹는 것이 불가능하고 쉽게 썩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기를 매일 먹게 되면 고기에 싫증을 느끼게 되어 다른 먹거리를 원한다. 열매도 마찬가지이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무엇을 계속 반복해서 먹거나, 하거나 하면 그것에 싫증이 나는 것이 보편적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선호체계는 결국 자기가 필요한 열매나 고기의 양을 초과하는 잉여 생산물을 다른 사람이 생산한 것과 바꾸도록 하였다. 이러한 거래는 자신의 잉여 생산물을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서비스와 교환하여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시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물건과 물건을 바꾸는 거래를 물물교환이라 한다.
그런데 고기와 열매를 바꾸는데 있어서 산돼지 다리 한 짝과 사과 50개를 바꾸는 것이 거래자가 합의한 교환비율이라면, 다리 1/3짝과 사과 몇 개를 바꾸어야 하는지는 계산하는 것이 어렵고 또 어떤 물품의 경우는 그렇게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렇게 물물교환에서는 교환비율의 문제와 가분성(divisibility)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거래 당사자들이 다행히 한 사람은 열매로 고기를 바꾸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은 고기로 열매를 바꾸기를 원한다면 거래가 가능하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면 물물교환에 입각한 거래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두 사람이 열매나 고기를 모두 자신이 소비하려는 양보다 많이 가지고 있지만 고기를 가진 사람은 열매보다는 곡식을 원하고, 열매를 가진 사람은 고기보다 생선을 원하는 경우 교환은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물물교환을 하는 경우 자급자족 상태에서 보다 이익이 있지만 서로의 욕구가 불일치하는 경우 교환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이익을 볼 수 없게 될 수 있다.
물물교환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동시에 거래하는 시장이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거래를 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열매, 고기, 생선, 곡식, 조미료 등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될 수 있다. 만일 열매를 많이 가진 사람이 생선을 원하고, 생선을 많이 가진 사람은 고기를 원하고, 고기를 가진 사람은 생선을 원한다면, 먼저 열매를 가진 사람이 고기를 가진 사람에게 가서 열매와 고기를 교환하고 나서, 그 고기를 가지고 생선을 사면 거래는 가능해진다. 이것이 시장이 발생한 이유이다.
그러나 곡식이나 열매나 생선이나 고기는 저장이 용이하지 않다. 또 그 부피나 무게가 크기 때문에 운반도 쉽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시장이 존재한다 해도 물물교환을 할 경우 그 거래는 저장 및 운반 가능성에 의해서 제약된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환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고기와 어느 정도의 열매를 바꾸는 것이 적당하고 어느 정도의 생선과 어느 정도의 열매를 바꾸는 것이 적당할 지를 계산하는 것도 어렵고 때로는 교환될 물건 자체를 나누는 것이 어려울 경우도 있다. 예컨대, 복숭아 10개와 산 닭 반 마리를 교환해야 한다면 이 교환은 산 닭을 반 마리로 나눌 수 없어서 불가능해진다. 또 설사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매번 교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물건마다 그 교환비율을 정하고 교환비율에 따라 값을 계산하는 데는 대단히 큰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산이 용이하고 저장이 가능하며 어느 곳에서도 동일한 가치로 인정되는 안정적인 교환수단이 필요하다. 그러한 특성을 가진 것이 바로 돈이다.
고대에는 돈으로 곡물, 소금, 조개껍질, 금, 은 등이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돈은 계산이 용이하고, 저장이 가능하고, 운반이 쉽고, 어느 곳에서도 동일한 가치로 인정되는 안정적인 교환수단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물건들은 이러한 특성에서 그래도 다른 것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하였기 때문에 돈으로 사용된 것이다. 우선 곡물이나 소금은 고대로부터 아주 소중한 생명의 안전을 담보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되나 말 등 도량형의 단위를 이용해서 그 크기를 나누는 것이 용이하다. 따라서 물건과 물건을 교환하는 비율에 따른 분할이 쉽다. 그리고 곡물이나 소금은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음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고기, 생선, 과일 등에 비해서 비교적 장기적인 저장이 가능한 물건이며 부패 가능성이 적어 비교적 운반도 다른 물건들에 비해 쉬웠다. 그리고 그 가치도 크게 변질이 되지 않는 수단이었기에 화폐로 먼저 사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곡물이나 소금은 그 부피와 무게가 크기 때문에 운반에 비용이 많이 들고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그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돈으로 사용된 것이 금과 은같이 운반이 어렵지 않으면서 그 가치가 균일하고 부패 가능성도 없는 희소한 귀금속이다. 그러나 금이나 은은 지하에 매장된 천연자원이므로 그 수량이 발굴과 채광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양이 갑자기 많아지거나 갑자기 줄어드는 현상이 반복되면 그 물건을 돈으로 사용할 경우 교환비율을 바꿔야 하므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돈의 비율이 변동이 심하면 인플레이션이라든지 디플레이션이라든지 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시장이 발달하면 할수록 필요한 돈의 양은 많아지는데 그 양이 생산되는 금과 은의 양에 의해 결정되므로 충분히 돈을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된다. 또한 균질하기는 하지만 나누는 것이 쉽지 않고 그 순도에 대해서도 때로는 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는데 거래비용이 드는 단점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20세기 들어서 처음으로 소위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인정하는 지폐와 동전을 발행하여 돈으로 사용하는데 이르게 되고 이를 지불보증하는 관리통화제도가 채택되어 오늘날처럼 효과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돈이 효율적인 교환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폐와 동전의 경우에도 위조 가능성과 분실이나 도난의 위험 등이 존재하므로 이에 드는 거래비용이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디지털혁명이 진행되면서 크레디트카드나 전자화폐 등 새로운 형태의 돈이 거래에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아마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는 더욱 가속화되어 지폐나 동전은 돈에서 주류의 지위를 잃어버릴 시기가 조만간 다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거래에서 사용되는 돈은 거래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시켜서 교환이 가져오는 이익을 돈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다. 따라서 돈은 인류가 발명해 낸 가장 효과적이고도 효율적인 삶의 지혜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인센티브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졌기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