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정부가 일자리를 만든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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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정부가 ‘일자리 창출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는 정부가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투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업이 향후 사업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면 시설투자를 하고, 이에 따라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면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반대로 사업전망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면 투자를 줄이고, 고용을 늘리려 하지 않는다.
물론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특정 부문에 재정지출을 증가시키면 그 부문에서 일자리가 증가함은 사실이다. 그래서 마치 우리 눈에는 일자리가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부에 의해 일자리가 증가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부문의 일자리가 감소한 결과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드는데 드는 자금은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 아니다. 그 자금은 민간부문의 납세자들에게서 나온 돈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납세자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들여야 한다. 납세자들은 덜 먹고, 덜 입고, 덜 쓸 수밖에 없다. 그 돈을 납세자에게서 거둬들이지 않고 납세자의 손에 남아 있게 한다면 납세자들은 식품ㆍ의류ㆍ자동차ㆍ책ㆍ컴퓨터ㆍTV 등에 보다 많이 지출했을 것이다. 그러면 각 부문이 자극을 받아 일자리가 늘어났을 터다. 그러므로 정부의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은 사회 전체의 고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부문 간의 고용 구성 형태만을 변경시킨 것에 불과하다.
사회 전체 고용량 번화없어
정부의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기만 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지 않고 단지 고용이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량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해가 없을뿐더러, 더욱이 고용의 혜택이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면 정부의 일자리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수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불황 때 일자리를 창출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근거로 미국의 뉴딜 정책을 든다. 일반적으로 뉴딜 정책은 대공황을 극복한 훌륭한 정책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대공황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간 투자가 증가한 이후였다.
뉴딜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미 연방정부는 1933년 16억 달러이던 1940년 53억 달러로 늘렸다. 세금이 무려 세 배나 증가한 것이다. 소비세ㆍ소득세ㆍ상속세ㆍ법인세, 그리고 이른바 ‘초과 이윤세’ 등 모든 세금이 올랐다. 이로 인해 투자자와 기업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민간투자가 극도로 침체된다. 결과적으로 불황이 장기화됐으며, 많은 일자리가 서서히 사라져 1930년대는 연평균 17%대의 실업률을 기록하게 된다.
다른 뉴딜프로그램들 역시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1933년에 제정된 ‘전국산업부흥법(National Recovery Act)’과 1935년의 ‘전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에 의해 임금이 시장 수준보다 높게 책정되면서 기업의 고용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고용이 줄고 생산이 줄었다.
이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흑인 노동자들이다. 약 5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1933년의 ‘농업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 역시 농민들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해 농산물 생산을 줄이게 하고 농산물 가격을 올려 주었다. 그러나 생산이 줄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게 됐고, 결국 가난한 흑인 소작농이 일자리를 잃었다.
‘테네시 강 유역개발공사(Tennessee Valley Authority; TVA)’는 우리가 뉴딜정책의 극적인 성공 사례로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댐의 건설로 인해 73만 에이커가 물에 잠겼으며, 그로 인해 1만 5654명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2003년 3.1%, 2004년 4.1%를 기록했다. 올해는 4%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업률은 2003년 3.4%, 2004년 3.5%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은 7.9%에 이른다.
“뉴딜도 일자리 만들지 못해”
이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 전 정부는 ‘종합투자계획(한국형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5%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4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 정책에 실효성이 있을지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의심스럽다.
지금 경기가 침체에 빠져 실업이 증가한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장경제 정책을 써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은 그 반대 방향이었다.
상속ㆍ증여세 포괄주의, 토지공개념, 종합부동산세, 사립학교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노조의 경영 참여 등은 모두 반시장적인 정책이었다. 또한 정책의 비일관성에도 그 원인이 있다.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처방은 정부의 ‘뉴딜정책’이 아니다. 민간 활동이 증가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선 취해야 할 조치는 규제 완화다. 경제관련 각종 규제가 7400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기업 활동을 막는 요소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그리고 불법적인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법과 원칙을 지켜 그러한 활동이 만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jw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