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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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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기업결합의 두 얼굴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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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규

로마신화를 보면 야누스(Janus)라는 문지기 신이 나온다. 이 신은 문의 안쪽도 보고 바깥쪽도 봐야 하기 때문에 얼굴이 둘이다. 야누스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사물은 야누스와 같은 양면성을 갖고 있으며, 경제현상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항상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저렇다는 말을 자주 한다. 두 팔(two hands) 달린 경제학자의 이야기는 이와 같은 경제현상의 양면성에 기인한다.


기업결합도 야누스적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기업결합은 한편으로는 경쟁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기업결합이 경쟁을 제한하는 이유는 합병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증대되기 때문이고 또한 기업의 수가 감소함으로써 기업간 담합의 가능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기업결합이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합병기업 간에 생산을 재배분하여 생산합리화(rationalization)를 도모할 수도 있고,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및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를 실현할 수도 있으며, 기술혁신과 경영효율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기업결합의 경쟁제한효과와 효율성 증대효과를 모두 고려하여 해당 기업결합의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잣대이다. 어떤 기준으로 두 가지 상반된 효과를 저울질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기업결합이 허용될 수도 있고 불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국이 적용하고 있는 판단기준, 즉 기업결합심사의 후생기준은 서로 다르다. 예컨대 미국, 일본, EU, 영국은 소비자잉여(consumer surplus) 기준을 채택하여 기업결합의 효율성 증대효과가 가격인하나 생산증대 등의 형태로 소비자에게 이전(pass-on)되는 경우에 한해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캐나다는 총잉여(total surplus) 기준을 채택하여 소비자후생뿐만 아니라 생산자이윤도 고려하고 있으며, 양자의 합이 증가하는 경우 기업결합을 허용한다. 독일과 호주는 고려의 범위를 더욱 넓혀 공익(public interest) 기준을 채택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기업결합이 경쟁을 제한하더라도 경제전체의 이익이나 국제경쟁력 등의 다양한 공익에 기여하는 경우 해당 기업결합을 허용해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 제7조에 의거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기업결합으로 인한 효율성 증대효과가 경쟁제한에 따른 폐해보다 클 경우 예외로 인정해주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공정위가 고시한 기업결합심사기준에 따르면 경쟁당국은 효율성 증대효과의 판단기준으로 생산ㆍ판매ㆍ연구개발 등에서의 효율성 증대효과뿐만 아니라 고용증대, 지방경제발전, 전후방 연관산업의 발전, 국민경제생활의 안정, 환경오염 개선 등 국민경제 전체적인 효과도 고려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및 기업결합심사기준은 (ⅰ) 기업결합심사의 후생기준이 공익(public interest) 기준이며, (ⅱ) 고려대상 효율성이 기업수준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적 효율성도 포함하고 있고, (ⅲ) 기업결합심사 시 경쟁제한효과와 효율성 증대효과를 비교형량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공익기준은 사회전체적인 비용편익 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그 타당성이 인정되나 기업결합심사에 필요한 정보량이 지나치게 많고 자의적인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점이 있다. 반면, 미국 등이 채택하고 있는 소비자잉여기준은 합병 이후의 가격상승 여부에 중점을 두어 판단하기 때문에 기업결합심사가 비교적 단순하나, 가치기준이 소비자 이익에 편향되어 있고 생산자 이윤을 무시하기 때문에 사회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키는 기업결합을 금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후생기준의 중간에 위치한 것이 캐나다가 채택하고 있는 총잉여기준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기준은 소비자 이익과 생산자 이윤을 모두 고려하고 있으며 일찍이 윌리암슨이란 경제학자가 주창하였고 후생경제학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다. 다만, 소비자잉여기준을 옹호하는 일부 경제학자와 규제기관들은 총잉여기준이 가격상승을 초래하는 합병의 방어를 용이하게 하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러 가지 후생기준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일이지만, 후생기준을 선택하는 것은 정책결정자들의 몫이다. 후생기준을 선택함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각각의 후생기준이 지향하는 목적과 철학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소비자잉여기준은 말 그대로 소비자의 후생극대화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 가격상승을 최대한 억제하고 경쟁 자체를 철저히 보호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따라서 어떤 기업결합이 사회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경쟁을 위협하거나 가격상승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되면 그 기업결합을 불허한다. 반면, 공익기준이나 총잉여기준은 경쟁보호 그 자체보다는 효율성을 최상위 목적으로 추구한다. 따라서 어떤 기업결합이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폐해를 능가하는 효율성 증대를 가져온다면 그 기업결합을 허용한다. 만일 햄릿이 덴마크의 왕자가 아니라 규제당국의 정책결정자라면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경쟁이냐 효율성이냐”를 두고 고민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희한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기업결합을 규제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스스로 고시한 기업결합 심사기준과 다른 잣대로 기업결합을 심사한다는 것이다. 심사기준에 나타난 후생기준은 분명 공익기준인데 공정위는 인천제철/삼미특수강 사건과 삼익악기/영창악기 사건에서 ‘소비자후생’을 기준으로 효율성 증대효과를 판단하였다.


사실 기업결합심사기준은 원래 법적 구속력이 없다. 따라서 공정위가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종종 합병심사지침과 괴리된 판결이 내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는 심사지침을 발간하는 기관(규제당국)과 합병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기관(법원)이 상이하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정책기능, 규제기능 및 심판기능을 모두 공정위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심사기준과 괴리된 기업결합심사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심사기준을 제정 또는 개정하여 고시하는 이유가 기업결합심사의 일관성 및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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