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음악은 왜 2 채널인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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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학
피곤할 땐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필자 역시 가끔 이 방법을 선택하는데 그 때마다 영화를 볼 때와 음악을 들을 때, 소리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엉뚱한 상념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영화와 음악으로부터 나의 눈과 귀를 멀리하게 만드는, 감성을 일깨워야 할 시간에 이성을 작동시키는 상념의 주제는 이것이다. 영화는 DVD의 경우 간단한 Home Theatre System만 갖추면 영화관 못지않게 입체적이고 실감나는 음향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음악 CD는 4 채널 이상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었어도 대부분 두 채널-스테레오로 감상해야 한다. 왜 음악 CD는 2 채널로만 울리는가? 가정에서도 4-채널 이상, 서라운드 스피커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면 마치 공연 현장에 있는 듯이 생생한 입체음향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입체음향 음악감상은 음악 애호가들의 꿈일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4 채널 음반 수요가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CD가 스테레오 방식에 기초하고 있음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이루어진다’는 경제학의 격언을 무색케 하는 사건으로 보인다. 과연 그런가? 음반 및 오디오 시장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디지털 혁명이 숨 가쁘게 진행 중인 21세기에 아직도 1950년대에 출시된 스테레오 방식이 기술표준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힘과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현상은 ‘블루오션’을 선점하기 위해 신제품, 신기술 개발에 열심인 기업들에게 경영 전략적 선택과 관련하여 어떤 시사점을 주고 있는가? 좀더 비약한다면, QS(Quadraphonic Sound)의 Stereo Sound 대체 실패는 기왕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제도와 관습을 바꾸고 성공적 사회혁신을 꿈꾸는 정치인들에게, 그리고 제도개혁에 관심이 많은 필자와 같은 연구자들에게는 어떤 교훈을 주는가?
4-채널 음악감상이 보급되지 않은 까닭은 기술적 문제 때문이 전혀 아니다. 음악 애호가들은 아는 일이겠지만 이미 1970년대 초반 음향기기 제조회사와 음반공급업체들이 이런 제품들을 개발하고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출시한 적이 있었다. UCLA의 포스트렐(Steven Postrel) 교수의 글을 원용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당시 최대 음반사였던 콜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 社에서 1971년에 4-채널 방식의 일종인 SQ 시스템을 도입, 산수이(Sansui)의 QS 시스템에 도전장을 낸다. 그리고 같은 해 JVC(Japan Victor Company)는 CD-4를 시판하며 RCA, 마츠시타(Matsushita)와 손잡고 미국과 일본에서 시장공략에 나서기 시작한다. 콜럼비아와 산수이의 quads는 매트릭스(matrix) 기술을 사용한 반면, JVC 연합측의 CD-4는 디스크리트(discrete) 기술에 기초하였다. 상이한 기술로 만들어진 4-채널 음반을 서로 다른 오디오 시스템에 장착할 경우 음악은 스테레오로만 울린다는 점에서 quads와 CD-4는 서로 호환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며, 서로 대체적인 기술표준이었다. 따라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양측은 새로운 유망산업 분야에서 표준을 주도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 즉 기술표준전쟁에 몰입하게 된다.
이처럼 CBS와 RCA 양측이 기술표준은 다르지만 음악 애호가들의 꿈인 4-채널 음향기기 및 음반을 출시하자, 스테레오 시스템은 4-채널 시스템에 의해 곧 대체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단음 시스템이 스테레오에 의해 축출된 것처럼 스테레오 역시 개념적으로 우월한 4-채널방식에 의해 도태될 것이며, 늦어도 80년대 말까지는 완전한 대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1974년 초엽만 해도 유망산업의 꿈이 가시화되는 것 같은 낙관적 분위기가 팽배했으나 그해 연말에 이르러서는 모든 게 환상이었음이 입증되기 시작했으며, 끝내는 그로부터 몇 년이 안 되어 4-채널 방식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결과 21세기에 와서도 우리는 디지털 서라운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여전히 스테레오 음악을 들어야만 한다.
그러면 개념적으로 한 단계 우월한 신기술이 구 기술표준을 대체하지 못한 까닭, 다시 말해 좀더 우월한 기술표준이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여러 측면의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두 가지만 보면 첫째, QWERTY 효과 때문이다. QWERTY는 1873년 Christoper Scholes가 개발하여 지금까지 널리 사용하고 있는 영문 자판을 지칭한다. QWERTY 자판은 소비에 있어서의 망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y) 때문에 좀더 효율적인 자판이라고 주장되는 DSK(Dvorak Simplified Keyboard) 등의 도전에도 사실상 표준으로 굳어져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데 음반산업 역시 망외부효과가 강하게 작용한다. 둘째, 망 효과가 있다하여, 제도와 표준의 역사적 경로의존성이 있다하여 좀더 효율적인 것으로의 대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새것과 옛것의 가격 대비 편익, 다른 소비자들의 선택에 대한 기대 등을 감안, 새것에 대한 평판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 시장은 점차 새것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의 문제는, 서로 호환성 없는 상품을 출시했던 CBS와 RCA 측은 기술적 우월성과 관계없이 상대방 기술표준이 시장에서 채택될 경우 QWERTY 효과에 의해 자신의 투자와 기술은 사장될 것이란 당연한 기대를 하게 되고, 따라서 양측은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표준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조급하게 자사 제품을 출시하면서 상호 비방에도 열심이었다는 점이다. 기술적으로 불완전한 제품의 성급한 출시인데다 호환성이 없기 때문에 판매업자들은 새것(quads)을 소비자에게 추천하는데 망설였고, 소비자들 역시 호환 불가능한 두 제품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며 둘 중 하나에 대한 자신의 선택이 시장의 선택과 일치할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어 구매를 망설이게 되었다. 게다가 자신의 평판유지에 관심있는 유명 아티스트들은 새로운 quads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이유로 quads 음반 제작 참여를 꺼렸기 때문에 4-채널 음반의 종류 또한 많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quads를 구입할 유인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이유였던 셈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1970년대 초엽, 당시에 유망산업이라 기대해마지 않았던 quads 음향기기 및 음반시장은 얼마 안 되어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면, QWERTY 효과를 의식한 양측의 성급한 기술표준 대체시도와 적대적 대립이 시장 자체를 소멸시키는 결과를 빚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게다. 만약에 당시의 기업들이 자사제품의 성급한 출시보다는 기술개발의 시간을 더 갖는 등 좀더 신중하게 준비했더라면, 또는 호환 불가능한 표준을 들고 전쟁하기 보다는 좀더 넓은 범위의 전략적 제휴를 형성하여 함께 QWERTY 효과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상당히 진일보한 기술표준 하에 4-채널 이상의 음악을 집에서 편히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과거는 과거일 뿐, 역사에 있어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자. 그러나 quads의 실패와 QWERTY의 존속은 기술표준의 변화, 성공적인 제도개혁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는 점에서 혁신을 희망하는 기업가 및 정치가들 사이에서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참고할 만한 소재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