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한국의 시장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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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권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고도성장 과정을 겪으면서 정부가 시장의 자원배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시장의 급속한 규모 확대, 점진적인 시장 개방과 국제화 추진과정에서 정부의 시장에 대한 지속적이고 직간접적 개입이 시장의 정상적인 자원배분 기능을 왜곡하며 경제의 역동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민간과 시장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사전적으로 의도한 정책목표가 실질적으로 달성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누적된 자원배분의 왜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각 부문에 시장원리의 도입을 확대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 및 연구서클에서 꾸준히 제기되었고, 정부기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들이 부분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시장기구의 원활한 작동을 위하여 공정거래제도의 시행, 정부의 규제완화, 공기업민영화, 시장개방의 확대, 외국인투자 촉진 등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시장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수단들은 정부규제주의에 근간을 둔 관치의 틀을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동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목표를 추진하기 위하여 선택된 정책수단과 방법이 정책목표와 정합성을 갖지 못하였고 정책추진 과정에서 일관성도 크게 부족하였다. 그 결과 시장기능을 활성화시키려는 본래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크게 미진하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참여정부 들어와 증폭되고 확대되고 있다.
여전히 공정거래제도가 공정한 시장경쟁을 촉진하기보다는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고, 정부의 규제완화도 양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소위 성역규제(공정거래법, 수도권집중억제관련 규제, 교육관련 규제 등)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규제완화가 형식적인 절차 간소화 내지 건수 위주의 실적에 치우쳐 있고, 공기업 민영화도 경제력집중 문제와 주식시장의 부담, 이해당사자들의 첨예한 대립으로 정책추진의 큰 탄력성을 갖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으며, 오히려 과거의 상태로 회귀되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와 반자본주의, 반시장 및 반기업 정서의 사회적 흐름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으며, 시장의 결과가 특정 이념적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시장이 다소 불안하면 정부의 시장 개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간섭과 개입에 대한 내용을 불문하고 그 자체가 선이며,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습성 및 관료들이 경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많이 안다는 선민의식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팽배해 있다. 국익 혹은 공익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갖고 이를 휘두르는 위정자들에게 순치된 우리의 의식수준도 문제이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관료들도 주어진 환경 내에서 사적이익을 극대화하는 individual politician임을 설파한 공공선택이론의 대가인 Gordon Tullock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법과 원칙보다는 여론 중시, 국민정서를 고려한 인기주의 영합 정책도 문제지만, 법원이나 헌재의 판결을 반박하며 법과 원칙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사법부가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에서 우려할 일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진행되어 온 시장원리와 상충되며, 위헌소지가 있는 일련의 정책들은 시장의 기능과 활력을 위축시키며, 시장경제체제 확립의 전제조건인 자유와 헌법의 가치를 훼손시킬 소지가 있다. 이러한 정책실험은 일과성이 아닌 몇 년간 더 지속될 경우 한국사회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한국에도 경직적인 노동시장, 강력한 재분배정책 지향의 사회보장제도, 고배당과 단기적인 이익에 치우쳐 장기적인 투자를 외면하는 기업, 그리고 평등교육에 함몰되어 가는 교육부문의 후진성 등 소위 독일병의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자유와 시장원리를 훼손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주의적 정책실험이 향후 경제사회 전반에 더욱 확산될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나아가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소위 개혁이란 미명하에 차별화보다는 평등을 지향하고, 효율보다는 형평을 중시하여 경쟁의 기반을 흔드는 논의나 법정책들은 사회주의라는 지적 토양 위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지적 흐름 및 쏠림 현상에 대한 건전한 보수의 움직임은 결집력도 약하고 임기응변식의 대처에 머물고 있다. 시장원리에 역행하고, 위헌소지가 있는 구체적인 정책에 대하여 관념론적이거나 수사적인 비판에 머물지 않고,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 모색이 매우 절실하다. 흔들리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재정립을 위하여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하여 면밀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논거를 통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일방향의 사회적인 흐름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