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국민연금기금이 경제를 살릴까?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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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식
작년 말 주식시장은 천군만마를 얻었다. 국민연금기금이라는 막대한 기관투자가가 법상으로는 제한없이 주식에 투자할 수 있도록 되었기 때문이다.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주식투자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가 연말에 이 조항이 완전히 삭제되면서 주식투자가 허용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명분으로 정관계에 대한 로비로 줄기차게 요구해 오던 것이라서 사실 숙원사업의 완성에 가까운 사건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주식시장이 그들의 말대로 선진화되고, 국민경제의 자본 조달을 창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와 혹시 다른 외부적 요인으로 주식시장이 붕괴되었을 경우 국민연금기금은 보호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앞선다.
첫째, 정부는 지금까지 주식시장이 국민연금과 같은 장기투자자가 없어서 활성화가 안되고 경기도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주가가 떨어지면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강조했고 국민연금기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 투자를 한다고 하면 주가는 항상 떨어졌다. 지금까지 국민연금기금의 투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민연금기금이 주식시장의 국면을 전환시켰다거나 안정화시켰다는 실증적인 근거는 없다. 주가는 기업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상승하지 않는다.
둘째, 이제 25년 후면 이제 기금이 고갈되기 시작할 것이다. 연금지급을 위하여 보유주식을 매각해서 현금화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의 어떤 나라도 겪어보지 못한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 많은 주식은 누가 살 것인가. 우리 경제가 성공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의 환경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30년후 아니 단 10년후의 중국, 인도, 브라질을 상상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게다가 철의 장막 속에 있던 동구가 눈을 뜨고 서구의 신경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유럽이 하나의 나라로 되어있을 것이고, 중국인 네트워크, 인도인 네트워크, 일본인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증가나 혹은 증시가 국민연금의 투자에 만족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셋째, 국민연금의 기금운영본부를 통제할 기금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간위원들로 채운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공연히 불안하다. 민간으로 구성된 민간위원회가 오히려 전문가들의 투자를 통제하는 옥상옥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민간위원이 기금관리를 하면 더 공정하다고 한다. 그러나 민간위원은 임기만 차면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다른 직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공정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책임을 일원화해서 책임을 물을 것은 묻고, 포상을 할 것은 하는 것이 더 낳을 수도 있다.
작년 말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제한을 없애는 것이 한참 논의되고 있을 때, 국민연금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다. 야당은 주주권을 행사하면 안된다는 입장이었고 여당은 주주권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재산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여당의 안이 통과되어 주주권에 대한 규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정부는 부인하겠지만, 대한민국 지주회사의 완성이며, 대통령은 이 지주회사의 명실상부한 회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주권 행사의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2003년부터 복지부령에 의하여 실시되어 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국민연금기금이 주식에 투자를 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크지 않았고 따라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또한 그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국민연금기금의 주식보유가 어느 정도가 될지 예측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가 주식 의결권 행사를 지금처럼 쉽게 넘어가기가 싫은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유혹이다.
첫째, 정부는 기업에 매우 다양한 묵시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대주주인 기업인데 정부가 눈길도 안준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믿기 힘들다. 이 상황이라면 어느 나라 정부든 그렇게 할 것이다. 정부가 주인이든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정부가 시키는 대로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자기 밥그릇을 찰리가 만무할뿐더러 그러다가 잘 안되면 정부가 알아서 구조조정도 해 준다.
둘째, 여기에는 반드시 거래가 성립된다. 또 기업주는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와 일정한 관계를 공식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세계화 시대의 기업 경쟁력은 하락하고 부실하게 된다. 수백만 번 깨끗한 거래가 있다하더라도 한 번의 정경유착이 나오면 자본시장은 완전히 붕괴되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신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한다. 더욱이 우리와 같이 소규모 자본시장은 더욱 그렇다. 극단적이고 기우같은 걱정이지만 우리는 종종 영화같은 현실을 목격한다.
셋째, 시민단체들은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해서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국민연금기금은 충분히 지배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지금도 정부는 일정한 가이드 라인을 주어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 가이드 라인은 이제 우리 상장회사 1,500개가 모두 영향을 받고, 앞으로 상장을 생각하는 모든 기업은 이렇게 움직일 것이다.
미국의 엄격하기로 유명한 100년 역사의 증권위원회(SEC)는 주식거래에 관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규제들을 아직도 만들고 있다. 규제를 아무리 만들어도 워낙 비리 수법이 현란해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조그만 허점이라도 보이면 계속 더 강한 규제를 만든다. 얼마 전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워트의 구속사건도 이 과정의 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증권시장이 정부와의 야합하는 넓은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증권시장이나 경제가 힘들어도 땀 흘리며 좁은 길로 가야 한다.
수많은 다양한 기업들에 대하여 정부가 획일적 기준으로 어떻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나? 기업의 가장 효율적인 지배구조는 기업이 가장 잘 안다. 선진국의 지배구조는 각국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산업마다 다르다. 게다가 기업은 겉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매우 연약한 생물과 같다. 어느 날 기업환경이 바뀌면 갑자기 사형선고를 받는 하루살이 인생과 다를 바 없다. 완전경쟁의 개방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기업이 정부의 획일적 원칙에 따라 움직이라고 하는 것은 기업의 멀쩡한 심장을 떼고 인공심장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결론은, 주식종사자들은 국민연금기금의 유입을 사절했어야 했고, 힘들어도 자신들의 시장 투명화 노력으로 주식투자자의 신뢰를 얻어서 살려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했다. 정부는 주식시장이 걱정이 되었으면 오히려 주주권의 행사를 포기하고 국민연금기금을 주식에 투자하지 않아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업의 규제를 풀어야 했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는 반드시 법적으로 제한되어야 하며 주주권 행사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개방경제의 시대에서 기업의 경쟁력과 국가의 영원무궁한 잠재력은 정부의 구속력이 없는 자유분방함에서 나온다.
김원식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wonshik@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