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전문가 칼럼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로 생존해 왔는가?

08. 4. 30.

3

한현옥

한국영화의 의무상영일수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겠다는 정부발표 이후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한국영화가 다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한국 영화산업은 지금까지 스크린쿼터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연간 40% 시장(상영일 기준)이 사전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한국영화는 미국영화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할 때면 어김없이 미국영화를 떠올렸는데 어느 틈엔가 한국영화를 떠올리게 되고 관객 수 기준으로 한국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32%에서 2004년 54.2%로 크게 증가되었으며 증가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스크린쿼터 하나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영화산업의 기반은 이토록 취약한 것일까?


스크린쿼터의 역할은 일정기간 국산영화의 상영기회를 보장해 줌으로써 국내 영화산업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크린쿼터제의 변화는 공급자라 할 수 있는 국내 영화제작사와 소비자라 할 수 있는 관객들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스크린쿼터의 확대는 공급자에게 무조건 일정기간 상영을 보장함으로써 영화제작에 따른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소시켜 준다. 이는 영화제작 편수나 편당 제작비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특히 편당 제작비를 증대시킨다는 것은 영화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여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스크린쿼터의 확대는 국내영화 제작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면 국내 영화제작자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이 반드시 한국영화의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지는 사전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소비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일단 스크린쿼터제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 일년 중 40%에 해당하는 146일은 무조건 한국영화를 봐야 한다는 것은 원치 않아도 한국영화를 봐야 하고, 보고 싶은 미국영화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크린쿼터제도는 다양한 영화 상영기회를 제한하여 소비자에게 선택권 제약이라는 희생을 강요한다. 물론 스크린쿼터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은 스크린쿼터제가 일견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하여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준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 시점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스크린쿼터가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였고 이후 경쟁력 유지를 위한 결정적인 토대로 존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의 근간이 스크린쿼터제도라고 보기는 좀 어렵다. 스크린쿼터제의 역사는 1966년부터 시작된다. 중간에 의무상영 일수를 여러 번 변경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가장 강력하게 시행되었던 시기는 1981년으로 이때 의무상영 일수 165일 이상, 외국영화를 상영한 다음에 반드시 국산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교호상여제도 실시되었다. 이후 1985년에 146일 이상으로 축소되고 1996년에는 교호상영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런데 한국영화의 관객점유율이 커지고 영화수출이 증가되는 등 한국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는 '90년대 후반·2000년대 이후이다. 이 시기에 스크린쿼터제도의 변화는 없었으며 가장 강력한 스크린쿼터제가 시행되고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스크린쿼터제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발전이 촉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스크린쿼터제가 일정 부분 기여한 바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동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국영화 발전의 결정적인 요인이 스크린쿼터가 아니라면 스크린쿼터의 축소로 인해 한국영화가 단시간에 망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더구나 영화가 가지는 일반적인 제품과는 다른 특징으로 인해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더라도 쉽게 한국영화가 미국영화에 밀리지 않을 것이다. 휴대폰이나 자동차와 같은 제품은 나라마다 약간의 취향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각 제품에 대한 질적인 평가는 나라마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즉 글로벌 기준에 의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제작하는 나라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며, 영화 안에 담겨진 문화, 정서의 차이가 크다. 따라서 글로벌 기준에 의해 평가하기 어렵다. 지역적 특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리 표현하면 영화산업에는 언어와 문화차이로 인한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워낙 국내 영화산업의 수준이 낙후되어 미국영화에 시장이 잠식될 수 있어 보호장치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영화산업의 수준이 향상되어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한 물량공세로 미국영화가 밀고 들어올 때 우리 영화는 우리의 언어와 정서, 문화에 바탕을 두고 국내 관객에게 좀더 친밀하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이점으로 대항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때 적어도 국내 영화시장을 쉽게 미국영화에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한현옥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hhan@pusan.ac.kr)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