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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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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양극화 대책과 기업의 역할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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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권

최근 양극화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은 임기동안 가장 주력할 우선 정책분야가 양극화 해소라고 밝혔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에 나타나고 있는 주요 현상이 양극화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부문의 실적과 계층간의 소득분배에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경제에 이처럼 부문간 계층간에 큰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강한 해결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양극화 해소가 중요하다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잘 사는 복지사회 구현은 모두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결방법이다. 경제학자 마셜은 경제학자의 덕목으로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얘기했다. 그는 “런던의 빈민가를 둘러보지 않은 사람은 경제를 논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따뜻한 가슴’을 강조하다 보면 가진 자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어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면 소득격차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시장경제의 원리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잘 나가는 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면 이른바 ‘사중손실(死重損失)’이 발생한다. 세금을 더 거두면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근로자는 일을 덜하며 소비자는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취지로 세금을 더 거두었으나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의 후생수준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의 이론일 뿐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때 세금을 많이 거두어 높은 복지수준을 유지했던 많은 유럽의 선진국들은 최근에는 감세와 과도한 복지지출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 국민의 세금부담과 복지예산이 다른 OECD국가에 크게 못 미친다는 논리로 증세와 복지지출 확대를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것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어느 정도의 복지지출을 더 늘릴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렇더라도 당장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급하다. 우선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범을 보여야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있다. 정부기관과 공무원 수가 과연 적정한지 재검토해야 하고 공기업의 민영화도 적극 추진, 재정 부족을 메우는 방안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숨어있는 세금을 제대로 거두는 조세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대다수 기업의 경우 탈세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내부인에 의해 고발을 당해 언제 추징을 당할지 모를 만큼 감시의 눈은 매섭다. 일부 고소득 전문직종의 탈세와 자영업자의 과세 누락을 막는 획기적인 방안이 실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증세가 추진될 경우 유리알 속에 있는 근로소득자들의 세금부담만 가중될 것이 뻔하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 정도가 매우 낮은데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높이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조세저항의 정치적 부담을 잘 알기 때문에 간접세 인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역진성이 강한 간접세가 오를 경우 저소득층의 부담을 늘릴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점을 지적하고 있으나 반드시 옳은 얘기는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재정이 상당부문 맡고 있는 사교육비, 노부모부양비 등에 대한 부담을 감안하면 선진국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기업만큼 불우이웃돕기, 재해성금, 각종 사회기여금 등 준조세 부담이 높은 경우도 드물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은 묵묵히 준조세를 부담해왔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양극화를 해소한다며 무리하게 증세를 할 경우 기업의욕에 찬물을 끼얹어 자칫 경제 회생에 큰 부담이 될 위험성이 크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복지예산 확대가 필요하나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성장 친화적 분배가 되어야 한다. 일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정부의 이전 지출을 다소 늘리더라도 일할 능력이 있는 자는 교육, 직업교육강화 지원 등을 통해 일자리를 얻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선진국들이 크게 후회하고 있는 이른바 ‘복지병’을 자초하는 꼴이 되기 쉽다.


정부도 양극화 해법의 중심을 ‘일자리 창출’로 보는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다. 일자리는 누가 만들 수 있는가. 바로 기업이다. 같은 돈으로 정부가 기업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는 어렵다. 큰 정부는 관료주의의 폐단으로 민간부문을 제약한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되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양극화 해소의 해법 중 하나로 기업의 사회공헌을 들고 있다. 능력이 되는 기업인이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금을 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기업과 기업인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풍토가 먼저 조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본래 업무는 수익을 창출하여 생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면 세금을 내기 어려워지고 일자리도 줄어든다. 기업이 일자리를 더 만들어 내기는 커녕 있던 일자리도 없어진다면 실업자가 양산된다. 이를 복지예산 확대로 해결하려다 실패한 사례가 독일병과 영국병이었다. 이런 고질병에 혼이 난 영국을 살린 것이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및 외국인투자 유인책 등을 통한 기업의욕 및 기업환경 개선이었다. 독일도 이제 영국식 해법에서 살길을 찾고 있다. 이는 양극화 해법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것을 시사한다. 선진국들이 엄청난 대가를 치룬 길을 우리가 스스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유럽의 선진국들이 우리 수준에 있을 때 보다 훨씬 여건이 불리하다. 중국, 인도의 등장과 세계화의 진전으로 기업 환경이 나쁘면 외국기업을 유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장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으로 떠나게 되어 있다. 양극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도 세계화에 따른 경쟁격화와 부문간 기술격차 확대에 밀린 경공업과 중소기업의 경영악화와 한국이탈 등이 일자리를 줄인 탓이다. 따라서 이 같은 본질을 무시하고 재정으로 해결할 경우 기업 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


실업자 및 신빈곤층 증가에 맞서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복지재정 확대가 불가피하더라도 양극화 해소의 기본 해법은 기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기술경쟁력 강화와 미래의 성장 동력 확보와 함께 새로운 사업 분야에서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 기업의욕을 북돋우려면 반기업정서가 완화되고 시장경제원리가 지켜진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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