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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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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서울 하늘과 에너지 정책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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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훈

아프리카 초원에서 서식하는 코끼리의 상아는 매우 귀한 경제적 자원이었다. 뽀얀 색깔의 상아로 만든 장신구와 조각품은 가히 매혹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 상아를 획득하기 위하여 코끼리를 포획하는 일이 늘어나자 코끼리는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다.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 이전까지 이런 일은 계속되어 왔다. 지금이라도 밀렵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지거나, 밀렵감시 활동에 들어가는 예산을 급격히 줄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멸종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축사에서 사육되는 소와 야생의 코끼리를 비교해 보자. 소도 역시 인간에게 유용한 우유나 고기 혹은 가죽을 제공한다. 어쩌면 코끼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용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의 수요가 늘어나서 소를 포획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종국에는 소가 멸종위기에 처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구상에 서식하는 소의 두수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멸종위기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왜 그런가? 이에 대하여 경제학 교과서는 재산권(property right)의 유무로 설명하고 있다. 즉 코끼리는 불특정 다수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재산인 반면에, 소는 소유자가 분명한 사적재산이라는 것이다. 소는 사적재산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재투자되어 멸종위기를 염려할 필요가 없지만, 코끼리는 공유재산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고 남획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매우 명쾌한 논리이다. 이 논리는 에너지 가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에너지의 사용은 소비생활과 생산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에너지의 사용은 한편으로는 편익을 주지만 이에는 반드시 상응하는 비용이 있게 마련이다. 비용을 한번 따져보자. 우선 에너지의 사용에 따른 비용은 에너지를 채굴하고 정제하고, 수송하고 발전하는 등의 활동에 소요되는 직접적인 비용이 있다. 다음으로 에너지를 사용한 후에 발생하는 대기오염을 위시한 환경피해와 같은 간접적인 비용을 들 수 있다. 직접비용은 유정이나 수송수단, 정제설비나 발전설비 등과 같은 가시적인 재산권을 소유하고 있는 공급자의 공급비용을 말한다. 이 비용은 재산권의 소유가 명확하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원리에 의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간접비용에 해당하는 환경피해는 그 상황이 다르다. 불특정 다수의 소유인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이라는 소중한 가치는 소유자의 무신경 속에 놓여지게 된다. 에너지 소비자는 이 비용의 지불을 면제받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사적재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에 따른 전체비용이 아니라 직접비용만 지불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에너지 소비를 유발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은 아프리카의 코끼리처럼 남획이 되게 된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도 코끼리처럼 상아 사냥꾼의 총부리를 피해 다니면서 멸종의 위기로 몰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의 공동소유자인 동시에 모두가 지불을 면제 받고 있는 에너지 소비자이다. 피해자이면서 약탈자이기도 하다. 물론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혜택을 받는 불평등한 구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별로 느끼지 못한다.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 때문이다. 서울 하늘의 색깔을 아직 참을만한 수준이라고 느끼는 사람보다는 이제는 더 이상 참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규모는 직접비용처럼 명확히 계산되지는 않지만 막대한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환경오염이 심해질수록 그 비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에너지 가격은 직접비용을 위주로 계산해서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어 왔다. 아프리카에 상아 사냥꾼이 늘어나듯 자동차와 에어컨이 늘어나고, 아프리카에서 코끼리가 보기 힘든 만큼 서울 하늘의 맑은 공기가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 가격정책은 환경비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가 사회적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그 재원을 절약과 환경의 보호에 투자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코끼리도 멸종되지 말아야겠지만 서울 하늘 아래에도 사람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에너지 가격과 관련된 정책을 근원적으로 바꾸는데 어느 정도 합의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실시는 항상 뒷전이다. 에너지 가격을 올리는 일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비인기 정책이다. 그곳에는 서민의 어려움이나 산업의 국제경쟁력 하락을 염려하는 논리가 있고, 물가를 염려하는 당국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선해서 선거에서의 표가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을 마냥 미루는 동안 서울 하늘은 늘 뿌연 색깔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손양훈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yhsonn@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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