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누구를 위한 단말기 보조금 규제인가?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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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권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 정책은 2000년 5월 단말기 과소비와 통신사업자의 경영환경 악화, 지배적사업자 지배력 남용우려, 이용자간 형평성 문제 등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이동전화 이용약관 개정을 통해 보조금을 금지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2002년 12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함으로써 시행일로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규제하게 되었다. 2006년 2월 단말기 보조금과 관련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2006년 3월 27일부터는 단말기 보조금이 18개월 동안 한 이동통신회사를 연속적으로 이용한 가입자에 한하여 지급이 허용되었다. 단, 보조금 지급 규제가 일몰되는 오는 2008년 3월 26일까지 1회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단말기 보조금은 단말기 과소비, 신용불량자 양산, 불법보조금 등 이동통신 업체들의 과당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명분으로 3년 전에 규제되었다가 이번에 일부 허용된 것이다. 보조금의 양성화로 휴대전화 가입자들은 새 단말기 교체시 다소의 할인 혜택을 보게 됐으나 시장의 반응은 썰렁하다. 이동통신회사들이 밝힌 보조금 지급액은 소비자들의 기대수준에 비하여 낮다. 보조금이 완전히 법으로 금지돼 있을 때 시장에서 일어나는 보조금 수준보다 결코 많지 않다. 이동통신 3사가 27일 정보통신부에 휴대전화 보조금 액수를 명시해 신고한 약관은 자사 가입자는 지키고, 경쟁사 가입자는 빼앗아 오기 전략이다. 정통부와 이동통신사들이 내세우는 소비자 배려 논리는 근본적으로 소비자 후생 제고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제권한의 유지와 경쟁사들의 이해득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고객을 앞세운 정부와 이통사의 보조금 논쟁은 공허하다. 원칙적으로 소비자 후생 제고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 유지 측면에서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 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등 대부분 국가에서 보조금 지급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 보조금 규제는 본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하며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킨다는 측면에서 사업자간 담합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측면이 있다. 합법 보조금 지급과 과징금 강화로 불법 보조금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동통신사들은 속성상 미래의 기여에 보조금을 쓰고 싶어 하지만 현재의 보조금 제도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기여에 보상한다는 취지여서, 가능하면 신규가입자나 전환가입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려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불법 보조금이 지급될 소지가 크다.
정부는 통신시장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나, 신문시장의 무가지 제한규제나, 백화점 경품 제한은 시장의 특수성 등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우며 규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나 이들 시장은 상품 혹은 서비스의 질 측면에서 차별화가 존재하고 다양한 영업방법을 통해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반시장들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특정업종을 겨냥한 별도의 정부규제를 도입할 이유가 미약하다. 이들 규제들은 결과적으로 소비자가격 인하를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단말기 보조금 지원, 무가지 제공 및 경품 제공 등은 일종의 가격경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영업 전략에 대한 선택의 권한은 원칙적으로 개별기업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격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일반기업과 같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야 한다. 단지 이 과정에서 두둑한 자금을 기반으로 하여 약탈적인 가격책정을 통해서 경쟁기업을 시장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는 견제되어야 할 것이다.
정통부가 국회나 규제개혁위원회에 단말기 보조금 규제 2년 연장안에 대해 설명할 때 지난 3년간 보조금 규제로 유효경쟁 상황을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단말기 보조금 규제는 후발 사업자의 경영안정성을 도입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지 유효경쟁 유지와는 거리가 있다. 정통부는 지난 3년간 단말기 보조금 금지정책으로 요금이 인하되는 등 이용자 후생이 증가했다고 하지만 이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이동통신 이용요금 인하는 기술개발, 경영혁신 등 여러 가지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단말기 보조금은 영업비 지출에서의 하나의 요인일 뿐이며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향후 법적용 및 법집행시 신규가입자, 전환가입자, 기기변경가입자, 타사가입자, 과거의 수혜 여부, 이용약관 한도 준수, 신기술단말기 해당 여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이 복잡한 규제들이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제대로 작동될지 의문이다. 정통부의 입법목적으로 이전에는 유효경쟁체제 유지라고 했다가 이제는 소비자 후생을 언급하고 있는데, 정부개정안은 두 가지 입법목적 달성과 거리가 멀다. 유효경쟁 유지와 소비자 후생 제고는 사업자간 공정한 규칙 내에서 치열한 경쟁과 소비자의 냉정한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