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 꼭 분리되어야 할까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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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금융업과 비금융업을 동시에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으로 매우 극단적이다. 따라서 이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금융업의 어떤 특성 때문에 다른 업종에는 적용하지 않는 '산업의 분리'라는 극단적인 정책까지도 필요로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과 금융이 결합되었을 때 발생할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사항 중의 하나는 금융회사를 소유한 기업집단과 그렇지 못한 기업집단 간에 경쟁력의 차이가 생기고 금융회사를 소유한 기업집단으로 경제력이 집중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집단 소속 금융회사가 시장에서는 차입이 어려운 계열기업에게 자금을 공급하거나 시장금리보다 낮은 우대금리를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비단 금융회사와의 관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제조업체인 경우에도 기업집단 소속 기업간에는 경쟁업체에 비해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업종간 분리 정책을 취하지는 않는다. 공정거래당국이나 세무당국이 부당지원에 대한 제재를 가할 뿐이다.
금융과 산업의 분리를 주장하는 다른 이유는 금융과 산업이 결합될 경우 금융회사가 고객의 이익이 아니라 기업집단의 이익을 위해 경영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도 금융업을 다른 업종과 분리하는 극단적인 정책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런 가능성 역시 다른 업종에도 존재한다. 계열사를 지원하는 회사는 비용이 상승하여 그 회사가 시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시장에서 경쟁이 존재하는 한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시장에서의 경쟁이 고객을 보호하는 것이다.
어떤 금융회사가 계열기업을 과도하게 지원해 자산운용 수익률이 낮아져서 경쟁 금융회사보다 낮은 수익률을 고객에게 제공하거나 부실화의 우려가 있다면 그 금융회사는 시장에서 외면당할 것이다. 더욱이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계열기업에 대한 거래한도제도 등 일반기업에는 적용하지 않는 특별한 규제가 가해진다. 이러한 규제가 있음에도 '분리정책'이라는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정책을 취해야만 고객이 보호된다는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금융과 산업 간 분리 주장의 논거 중에서 타당성이 있는 것은 금융회사가 계열사에 대한 지원과정에서 부실화될 경우 해당 금융회사의 부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는 시스템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은행이 부실화되어 고객이 맡긴 예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는 소문이 돌면 고객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 문 앞에 장사진을 치게 된다. 이런 뱅크런(Bank Run)이 부실화된 특정 금융회사에 국한되면 문제가 없으나 막연한 불안심리로 건전성에 이상이 없는 다른 금융회사에까지 확산되어 금융시장 전체가 마비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시스템 리스크'라고 한다.
이러한 뱅크런의 전이와 시스템 리스크는 은행권의 전형적인 현상으로 은행의 독특한 자산·부채구조에 기인한다. 은행의 부채인 예금은 고객이 인출을 요구하면 언제든지 지급해야 한다. 요구불예금은 물론이고 정기예금이나 정기적금의 경우에도 일부 금리 면에서의 불이익이 있을 뿐 고객의 인출요구에 즉시 응해야 한다.
거래은행의 건전성에 이상이 없음에도 인출을 하는 우를 범한 경우 고객이 입는 손실은 금리의 일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건전성에 이상이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꾸물거리다가 입는 손해는 원금에까지 미친다. 따라서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야기할 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은행이 실제로 부실 우려가 있는지 여부를 냉정하게 따지기 이전에 고객은 은행으로 달려가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은행의 자산구조는 뱅크런에 대응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자산인 대출금은 약정된 만기 이전에는 은행이 일방적으로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에 실패해서 부실화된 개별 금융회사가 시스템 리스크를 통해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負, -)의 외부효과야말로 금융업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시스템 리스크의 가능성은 은행, 증권, 보험 등 업종에 따라 다르다. 증권은 고객예탁금을 외부에 강제적으로 예탁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뱅크 런이 발생해도 지급불능에 빠질 위험이 없다. 보험의 경우에는 중도에 해약을 하는 경우 환급금이 원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고객은 중도해지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은행과 비은행 금융업에 대해 동일한 강도의 규제를 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또한 산업과 금융을 분리해야만 시스템 리스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금융업에 대해서는 다른 업종에는 없는 각종 규제가 가해지고 방대한 감독기구와 예금보험제도가 존재한다. 이러한 제도는 모두 금융업의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분리라는 극단적인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만으로는 시스템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금융과 산업 간 분리라는 극단적인 정책을 취하는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가장 엄격한 미국의 경우에도 은행에 대해서는 산업과의 분리정책을 적용하고 있으나 증권, 보험 등 비은행 금융업에 대해서는 분리정책을 취하고 있지 않다.
최근 들어 외국자본에 의한 은행지배가 문제되고 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의 결합에 따른 부작용과 외국자본의 은행지배에 따른 부작용 중에서 어느 것이 큰지를 냉정히 판단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정책연구실장, sm7060.lee@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