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한·미 FTA 금융부문 개방, 금융선진화의 기회로 삼아야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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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지난 2월 3일, 한·미 양측 대표가 미국 의사당에서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함에 따라 한·미 FTA의 막이 올랐다. 거시적으로 자유무역은 교역당사국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으나 한 국가 내에서는 자유무역으로 이득을 보는 산업들과 피해를 입는 산업들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FTA의 성공적 체결을 위해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에 대해서 우리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의 경우 한·미 FTA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은 농업과 서비스 부문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농업과 영화산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격렬한 FTA 반대운동으로 인해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금융서비스 분야 또한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관심을 가지는 중요한 분야 중의 하나이다. 최근 한·미 양측은 17개의 협상분과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는데 금융서비스는 그 중 한 분과이다. 금융산업은 미국에 비해 경쟁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산업이므로 이 부문에 대해 어떠한 자세로 협상에 임할 것인가를 살펴보자.
아직 금융부문 협상의 구체적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직·간접적인 미국의 요구를 살펴보면 예상되는 쟁점의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예상되는 현안은 네거티브(negative) 금융시스템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에 주한 미국대사관 고위 간부가 국내 주요 언론사 관계자를 초청하여 한·미 FTA와 관련한 브리핑을 가졌는데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금융사의 가장 큰 불만은 한국에선 금융감독원 규제로 인해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과 허가가 어렵고 허가 절차도 투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고 한다. 사실 그동안 미국계 금융사들은 다양한 상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금융감독을 네거티브시스템으로 전환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었다. 또한 그동안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등을 통해 각종 협동조합이나 우체국의 금융서비스로 인해 불공정 경쟁이 초래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쟁도 예상된다. 국경간 금융서비스에 대한 허가도 이슈로 부각될 수 있다. 국경간 금융서비스란 한 나라에 위치한 금융회사가 다른 나라의 소비자에게 지점이나 자회사 형태의 상업적 주재없이 금융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한·미 FTA 협상에서 부각될 수 있는 금융부문 이슈의 상당수는 그동안 통상현안 차원에서 미국에 제기해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이외에 외국은행지점의 추가설치 인가요건 완화, 외국계 금융기관의 고객정보를 외국의 데이터 센터에서 통합관리 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 금융기관의 소득에 교육세가 부과되는 문제 등 여러 통상현안 차원의 이슈들도 있다. 그 중 상당수는 FTA가 아니더라도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풀어야 될 문제들이다. 네거티브(negative) 금융시스템만 하더라도 동북아금융허브를 지향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종국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다. 또한 각종 협동조합이나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유사보험과 민간보험간의 불공정경쟁 문제는 공정경쟁 차원에서 국내 보험사들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금융부문에 있어서 미국이 제기하지 않더라도 금융선진화를 위해서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상당수가 있다. 이는 우리가 금융부문의 FTA협상에서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면 개방을 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금융부문에서 어느 정도의 양보를 한 다음 다른 부문에서 우리가 실리를 얻는 전략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서비스 분야는 여타 서비스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이 진전된 상태이므로 개방에 따른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감독의 미비가 예상되는 현안에 대해서는 금융시장 건전성의 확보 정도에 따라 시기조절이 필요할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시장개방은 하되 그 시기를 협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적절한 규제는 국제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개방과 함께 필요한 규제 장치를 도입할 수도 있다. ‘국제투기자본에 금융시장을 내줄 수 없다’는 이유로 금융부문의 FTA를 반대하는 노조와 일부 사회단체들의 주장은 금융산업은 물론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능동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하며 FTA를 통해 금융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