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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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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서울대만 배부르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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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섭

일반적으로 국가가 대학교육을 지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학교육이 사회에 큰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의 외부효과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국립대학의 설립과 운영의 명분인 셈이다. 그러나 두 번째 주장은 의심스럽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사교육의 양과 질이 결정되고 사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은 학생들이 서울대에 많이 들어갔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는 국립대학의 운영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의심스럽게 한다. 2004년 국립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발표한 <입시제도의 변화 :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에 따르면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학력이 높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의 자녀들과 특목고 출신의 학생들이 서울대학교에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통계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서울대가 공개한 지난 2000학년도 <신입생 특성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서울대 신입생들의 아버지 직업 분포는 관리직과 전문직이 49.8%로 생산직 노동자 9.8%에 비해 5.4배, 일반 사무직 16.9%에 비해 3배나 많다. 우리나라 전체 남성 경제인구 가운데 관리직과 전문직 종사자가 9.1%라는 점을 고려하면 49.8%는 아주 높은 편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서울대 입학생 부모의 직업은 고급 공무원, 기업체 사장이나 간부 등 관리직, 변호사, 의사, 교수, 언론인 등 전문직이 절반에 이른다. 이러한 통계는 서울대를 통해 '부와 계급의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회적 우려를 낳을 만도 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가 누리는 지위가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다른 대학과 비교하여 학교시설이 좋고, 교수진이 훌륭하며, 장학금 혜택이 높다. 졸업 뒤에도 취직과 결혼에서 유리할 뿐만 아니라 학연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각 분야에서 한국 사회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타고난 능력이 남보다 낫고, 열심히 노력하여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대에 진학하고 재학 중에도 성실하게 공부하고, 졸업 뒤에도 노력을 계속하여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것은 본인에게도 영광이요 사회적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좋은 조건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더 나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은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립 서울대학교가 필요하다'는 명분과는 맞지 않는다. 서울대와 같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이 가정 형편이 상대적으로 좋은 학생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이미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은 어떤 이론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국가권력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돈이 부자들의 교육비로 사용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울대는 국가정책에 의해 다른 대학과 비교하여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서울대(국립) 총장은 하버드대학(사립) 수준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정부에 요청하였다. 전국 200여 대학 가운데 오직 서울대만이 'BK21' 지원금을 50%나 독식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수혜받은 집단을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세금으로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를 졸업하면 사회적으로 우대받고 높은 수입을 얻는 자리에 가게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졸업 후에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립대학을 졸업한 학생들과 비교하여 세금으로 혜택을 받은 만큼 국민을 위해 더 봉사하는 것도 아니다. 사립의과대학과 비교하여 저렴한 등록금을 내고 공부한 서울대 의과대 학생들이 졸업 후에 무의촌에서 더 많이 봉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싼 등록금을 내고 공부한 사립의과대학 졸업생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국가의 역할이 강한 자보다 약한 자를 돕는 것이라면 서울대를 비롯하여 전국의 국립대학을 사립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립대학에 투자한 교육예산을 상대적으로 불우한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 보통 교육기관에 투자해야 한다. 국가에 의한 교육지원은 상급 교육기관이 아니라 가장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하급 교육기관부터 상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형편을 고려한다면 모든 국립대학을 사립화하고, 제한된 교육재원은 대학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에 지원되어야 한다. 또한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는 대학진학의 기회가 막혀 있기 때문에 국가는 국립대학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다른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들을 지원하는 경우에도 무료지원이 아니라 졸업 후 취업하여 학자금을 상환하는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모든 국립대학을 사립으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이 입학하는 서울대를 사립대학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joongsop@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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