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왜 한·미 FTA 인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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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지난 6월 5일부터 닷새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FTA의 제1차 공식협상이 열린데 이어 오는 7월 10일부터는 서울에서 제2차 협상이 열리게 되어 있다. 이를 앞두고 전문가 자문단 회의, 정부합동 공청회, 대외경제장관 회의 등이 연달아 계획되고 있다. 양국간 FTA 협상소식이 전해진 이후 결성된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연대는 이미 제1차 협상지인 미국까지 날아가 시위를 벌이는 등 실력행사를 했지만 이번 서울협상을 전후해서는 더욱 격렬한 반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FTA를 바라보는 일반국민들의 시각은 점점 더 불안감에 휩싸일 것이며 왜 한·미 FTA가 필요한 것인지 논란이 더욱 불거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왜 한·미 FTA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의 성장전략은 한마디로 수출주도형 발전정책이었다. 이러한 수출위주 정책에 익숙한 우리국민들에게는 수출은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고 수입은 적게 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FTA 등의 개방정책을 논의할 때는 의례 우리가 얼마를 더 수출할 수 있고 또 수입은 어떻게 하면 적게 할 수 있을지 그런 것에 관심이 많으며 이번 한·미 FTA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미 FTA의 영향을 생산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즉 제조업은 이익을 얻을 것이고 농업과 서비스업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리는 결국 생산자의 시각만이 반영된 논리이다. 이런 식으로 생산자들의 관점에서만 문제를 보다 보니 심지어는 이익을 보는 집단에서 손실을 보는 집단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피해가 예상되는 집단에서는 가능한 자신들의 피해가 엄청난 것으로 부풀려서 보다 많은 보호와 보상을 받아내고자 하는 유인이 생긴다. 반면에 어느 정도의 수혜가 예상되는 집단에서는 가능하면 이익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어 한다.
현재 한·미 FTA와 관련해서도 바로 이런 현상이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 즉 섬유, 의류, 신발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 자동차, 전자, 철강 등 우리의 주력수출산업에서는 한·미 FTA로 인한 수출증대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식의 논리를 제기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미 FTA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주력제조업에서 조차 이익이 없다는 것을 굳이 왜 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또한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정치·안보와 관련된 음모가 숨어있다고까지 보고 있다.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개방을 지지하는 계층에서 조차 내년 대선구도와 관련하여 정치적인 계산이 숨어있다는 의심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정부·여당 일각에서 나오는 모호한 발언들 때문에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국제관계의 협상을 벌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결코 그럴 리는 없다고 하지만 아무튼 경제적인 관점에서 조차 한·미 FTA의 이유가 널리 인식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도 지적하였듯이 한·미 FTA의 영향을 생산자 측면의 시장접근만을 고려해서 그런 것이며 또 다른 측면인 소비자, 즉 절대다수의 국민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FTA의 근본취지는 교역장벽을 낮추어 경쟁을 부추기고 그에 따라 기업이 보다 양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여 생산효율과 후생수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결국 FTA는 생산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자기혁신을 유도하고 그에 따라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지난 몇 년간 저성장의 기조가 유지되면서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선진국 수준에는 아직 못 미치면서 후발개도국에 추격을 받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제조업에 기반을 둔 성장 동력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선진국은 되어보지도 못하고 세계의 3류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 또한 있다. 물론 우리가 지금 한·미 FTA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에 모두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으며 한·미 FTA는 우리 스스로에게 충격을 주어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장기국가생존전략이다. 생산자 집단을 위한 FTA가 아니라 소비자인 절대다수의 국민과 후손들의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한 FTA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