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누구를 위한 농업·농촌 보호인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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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지난 연말 정부가 총력을 기울였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비준동의안 통과가 끝내 해를 넘기고 말았다. 물론 이번 임시국회의 회기가 며칠 더 남아있고 2월 중에도 또 다른 임시국회를 통한 비준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아직 희망을 버리기에는 이를 수 있다. 그러나 한·칠레 FTA와 관련한 작금의 세태를 볼 때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농업계에서는 한·칠레 FTA의 통과는 곧 한국농업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농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8000억 원 규모의 FTA 이행기금을 포함한 총 119조 원에 달하는 향후 10년간의 농업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다. 비록 향후 10년간이기는 하지만 현재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불과한 농업을 위해 올해 전체정부예산 118조 3천억 원보다 많은 액수를 투입한다니 이는 대단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계의 반대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된 것은 아마도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 따른 농업개방 때도 그랬으며 이번 한·칠레 FTA의 체결도 그렇겠지만 시장개방에 따라 피해를 보는 농민들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피해를 보는 농민들은 반드시 보살펴야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시장개방을 통해 농민전체가 피해를 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농민이 똑같이 정부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FTA를 비롯한 시장개방을 통해 피해를 보는 농가도 있겠지만 새로운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더 나은 결과를 보게 되는 농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때 정부는 피해를 보는 농가도 보살펴야 하겠지만 잘하는 농가도 함께 격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정부의 농업지원 방안은 능력이 서로 다른 농가에 대해 각각 다른 처방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농업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우리농업의 국제경쟁력도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사회에는 이러한 차별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정부의 지원도 획일성을 벗어나기 힘들다. UR 이후 농업구조조정을 위해 57조 원이라는 자금이 투입되었음에도 우리농업의 경쟁력이 10년 전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지지 않은 원인이 여기에 있다. 능력의 차이를 무시한 채 모두가 똑같이 축사를 현대화하였으며 모두가 똑같은 첨단농법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능력있는 소수농가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으나 대부분의 평범한 농가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정부와 농업계가 이와 같은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농업계는 국가경제 전체를 볼모로 자신들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으며, 정부는 실현가능성 조차 의문시되는 규모의 지원을 약속하며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려고 있다. 또한 국가의 미래를 함께 책임져야할 국회는 다가올 총선에만 신경을 쓰느라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번 묻고 대답해 봐야 할 것이다. 정답을 먼저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진심으로 농업과 농촌을 보호하고 돕고 싶다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농업·농촌을 돕는 길은 차별화를 인정하는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 농업의 국제경쟁력은 능력있는 농가를 발굴하여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 또한 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농가에 대해서도 보상과 지원이 물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지원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능력에 맞도록 선별적이어야 한다. 즉, 가능성이 있는 농가에 대해서는 그 능력을 키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며 그것도 불가능한 고령농가 등에 대해서는 농업의 다원적 특성까지 감안한 충분한 수준의 복지환경이 보장되는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