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고갈되는 연기금,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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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린
2004년 말 국회에서 연기금의 여유자금을 공공부문 건설투자 활성화에 활용하려는 ‘한국형 뉴딜정책’과 연기금의 투자대상을 확대하려는 ‘연기금관리법’이 통과되면서 연기금 운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기금’이란 국민연금처럼 연금가입자들이 은퇴 후 받기 위해 납부한 보험료를 적립하여 운용하는 기금을 말한다.
연기금 운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적립금이 계속 고갈되고 있어 우리 국민들이 나중에 막대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연금이나 공무원연금의 경우 적립금은 이미 고갈되어 매년 막대한 국민세금이 연금 지급에 사용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아직 적립금이 고갈되지는 않았지만 1988년 제도도입 당시 ‘부담은 적게 하고 급여는 많이 받도록’ 설계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금의 제도가 유지될 경우 2036년에는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 수지적자가 발생하게 되고 2047년에는 적립기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가입자들이 은퇴 후 원래 약속받은 수준의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현행법대로 정부가 원래 약속한 수준의 연금을 다 지급보증하게 되면, 그 재원은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세금 부담이 현재보다 훨씬 더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세부담률을 올린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뿐 아니라 2019년 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되면 지금보다 대폭 적은 수의 젊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 노인들을 부양해야 된다. 따라서 엄청난 세금 부담을 떠안게 되는데,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연금의 지급불능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현재 잘못 설계된 연금제도를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도록’ 개선하여 제도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기금 운영을 잘해 수익을 많이 남겨서 적립금 규모를 적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연금제도 개선은 몇 년 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들어서는 정부마다 자신들의 임기 내에는 비난만 받게 될까 지금까지 미루어왔으나 빠른 시간 내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연기금 적립금을 잘 운용하는 문제가 오늘날과 같은 저금리시대엔 매우 중요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경우 실질금리가 ‘0’에 가까운 금리를 제공하는 은행에 적립금을 쌓아두는 것은 고갈시기를 앞당길 뿐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연기금을 운용할 기금운용본부를 상설화하고 여기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연기금 투자를 해왔다. 2003년 6월 기준으로 100조 원이 넘는 적립금 중 79.2%를 금융부문에, 20.3%를 공공부문에, 그리고 0.5%를 복지부문에 투입·운용해 왔다. 1988년부터 2003년 6월 말 까지 기금운용의 연평균 수익률은 8.85%였다. 그리고 금융부문 투자 중 대부분인 91.5%는 채권에, 7.5%는 주식에, 나머지는 벤처 및 기타 단기자금에 투자해 왔다. 금융부문의 투자수익률은 같은 기간 연평균 9.05%로 공공부문이나 복지부문보다 조금 높았다.
그런데 과거 정부는 이러한 연기금을 경기부양이나 다른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해 주식과 공공부문건설에 이 눈먼 돈을 활용하려 한 것이다. 1999년까지 정부는 연기금을 정부에 예탁하도록 하여 이 돈을 공공부문과 복지부문에 투자하고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 주었다. 그리고 정부는 때로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해 연기금을 주식에 투자하도록 강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수익률은 대체로 국민연기금의 자발적 투자수익률보다 낮았다. 따라서 1999년 공공자금관리기금법 개정으로 연기금의 정부예탁제도를 해제하였고, 투자위험이 높은 주식투자에 대해 제한을 가해왔다. 특히 주식투자는 선진국의 경우 그 장기수익률이 채권보다 높아 많은 연기금들의 주식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식시장 수익률은 그 반대여서 연기금 운용에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가 그 투자를 제한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적 투자로는 연기금의 적립금 수익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에 연기금 운용을 보다 신축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즉 기존 채권 중심의 투자에서 벗어나 주식이나 부동산, 외국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로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연기금의 주식투자는 주식시장에 활력을 넣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연기금의 투자수익률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경우 연기금의 투자는 어디까지나 연기금 운용본부의 시장원리에 따른 자발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한국형 뉴딜정책에서처럼 공공부문의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서나 주식시장의 단기부양을 위해 연기금이 이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연기금의 투자는 현재 채권 중심의 보수적인 투자보다는 좀더 신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기금의 자발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연기금 운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단기적 경기부양이나 수익성 없는 공공부문에의 투자를 목표로 한 정부의 간섭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나성린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hwalin@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