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방송통신융합기구: 쇼의 머리와 던컨의 몸매?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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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규
코르셋과 토슈즈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춤을 춰 현대무용의 혁명을 가져온 ‘맨발의 이사도라 던컨(1878-1927)’은 극작가이자 독설가이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버나드 쇼(1856-1955)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과 제가 결혼하면 선생님의 뛰어난 머리와 나의 아름다운 몸매를 닮은 걸작품이 태어날 거예요.” 그러자 버나드 쇼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의 빈약한 상상력과 나의 볼품없는 외모를 닮은 애가 태어난다면 어떻게 하겠소?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버나드 쇼가 우려했던 그 끔찍한 일이 현재 방송·통신 융합기구 개편논의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송과 통신 분야의 업무는 방송위원회,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등으로 분산되어 서로 다른 정책 및 규제의 틀이 양 분야에 적용되어 왔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에 대하여 중복규제가 발생하거나 규제기관의 불분명으로 인해 신규서비스의 도입이 지연되고, 융합서비스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7월 28일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를 출범시켰다. 융추위는 이후 3개월간 약 30여 차례의 논의를 거쳐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기구개편방안을 도출하였다.
융추위가 다수의견으로 제시한 기구개편안은 통합위원회(안)인데, 이는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방송·통신 관련 기능 전반을 범부처적으로 통합하는 방안이다. 통합기구의 형태는 방송의 독립성 및 공정성 보장을 위해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행정기구인 위원회 구조로 하되, 산업진흥적 측면의 보완을 위해 독임제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즉 통합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하되, 위원장은 장관급으로 하고 부위원장은 차관급으로 하는 등 위원간 계서적(hierarchy) 성격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융추위는 그러나 각 부처의 콘텐츠 관련 기능을 통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로 논의하고, 정통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우정기능은 현 체제를 유지토록 하되 추후 검토하며, 방송통신의 내용 및 윤리 등에 대한 심의기구는 민간기구로 분리할 것을 건의하였다. 국무조정실은 융추위의 건의를 근간으로 법안을 확정하고 부처간 협의와 입법예고를 거쳐 12월 중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상과 같은 기구개편 논의와 융추위가 제시한 통합위원회(안)에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중대한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현재의 기구개편 논의가 전체적인 정부조직 개편 논의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1년 남짓 지나면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고 그때가 되면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이 있을 것인데, 그때 방통융합기구 개편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그때까지는 융합서비스가 더 이상의 지체나 중복규제없이 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가칭 방송통신위원회를 한시적으로 구성하여 융합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담당케 하면 된다. 합의도출이 쉽지 않은 기구개편에 시간을 끌면서 융합서비스를 계속 지연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전체적인 정부조직 개편문제와 분리되어 융합기구 개편을 근시안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는 통합기구의 독립성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방송위원회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또는 특정부처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위원회이다. 또한 대통령이 임명하는 9인의 위원 중 3인은 국회의장이 국회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여 추천하고, 3인은 국회 문광위의 추천의뢰를 받아 국회의장이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위의 정치적 독립성은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융추위가 건의한 대로 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든다면 동 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은 더욱 약화될 것이 뻔하다.
셋째는 통합위원회가 정책기능과 규제기능을 모두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는 방송, 통신, 그리고 융합이라는 세 단어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규제완화’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본래 정책부서 또는 정책결정자는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마음으로 바람직한 정책을 입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조직에서 정책기능과 규제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경우 정책결정자는 가능한 한 규제담당 부서의 일과 권한이 축소되지 않도록 정책을 입안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정책이 규제를 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책이 규제에 이끌려 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통합위원회의 탄생과 함께 방송, 통신, 융합서비스 분야의 규제완화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또한 통합위원회가 규제기능뿐만 아니라 산업진흥기능도 함께 담당한다는 것도 비정상적이다. 이는 마치 축구경기 심판이 축구팀 후원회장을 겸임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통합기구의 조직형태 문제다. 융추위는 전술한 바와 같이 통합기구의 형태로서 합의제 행정기구인 위원회 구조에 독임제적 요소를 가미한 혼합형 조직을 건의하고 있다. 마치 ‘쇼의 머리와 던컨의 몸매’를 겸비한 옥동자와 같이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산업적 추진력을 가진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대로 ‘던컨의 머리와 쇼의 몸매’가 될 가능성이 크다. 통합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추진력이 뛰어난 독임제 부처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끔찍한 조직’이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필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독립 규제위원회’다. 방송·통신과 관련된 규제업무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규제위원회에서 전담하고, 관련 산업정책·진흥업무와 사회문화정책은 각각 별도의 산업정책 총괄부서와 사회문화정책 총괄부서에서 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통합기구는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고, 정책·진흥기능과 규제기능의 통합에 따른 폐단을 없앨 수 있다. 이러한 독립 규제위원회의 설립은 차기정부의 전면적인 조직개편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시안적인 통합기구의 설립과 설립 후의 땜질식 후속 조직개편이 가져올 파장을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