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경쟁은 움직이는 것이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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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성공과 실패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를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시장의 실패를 말하기 위해서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흔히 그 기준으로 완전경쟁시장을 사용한다. 따라서 시장의 실패를 얘기하려면 경쟁과 완전경쟁시장의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경쟁’을 ‘시장과정(market process)’으로 인식하였다. 즉 ‘경쟁하다(to compete)’의 동사적 의미로 사용하였으며, 그 본질은 상대방보다 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제반 행위를 함을 뜻하였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도 경쟁자의 수가 많을수록 경쟁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달성되도록 하는 힘(force)으로 인식하였을 뿐, 경쟁을 시장구조와 연결하여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르면 판매자가 가격을 깎아주는 행위나 소비자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자 하는 행위는 경쟁자보다 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기고자 하는 경쟁 행위다.
그러나 경쟁 개념이 ‘과정(process)’이 아닌 ‘상태(state)’로 바뀐 것은, 경쟁의 끝에 존재하게 되는 ‘상태’에 관심을 가진 쿠르노(Cournot)의 완전경쟁시장 개념 이후의 일이다. 쿠르노에 따르면 각 기업의 생산물이 산업의 총생산량에 비해 미미하여 그 생산 여하가 가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경쟁의 효과가 그 한계에 도달한다. 이는 매우 많은 판매자가 존재하여 판매자가 직면하는 수요곡선이 수평임을 뜻한다. 이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의해 경쟁과 시장구조가 결합되었으며, 상태로서의 완전경쟁이 하나의 시장구조로 부각되었다. 쿠르노는 시장구조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설명한 바가 없었으나, 제본스(Jevons)와 에지워드(Edgeworth) 등에 의해 경쟁과 시장구조가 결합되어, 이후 오늘날 통용되는 완전경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완전경쟁은 서로 경쟁하는 많은 기업들이 산업에 자유롭게 진입하여 경쟁한 결과, 더 이상 경쟁하지 않는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하는 상태이다. 즉 경쟁의 결과가 그 한계에 다다른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특정 상태를 뜻하는 완전경쟁은 그 가정의 비현실성과 그에 따른 현실세계에서의 실현 불가능성도 문제지만, ‘경쟁하다’를 뜻하는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는 곧 완전경쟁에서는 경쟁이 과정이 아닌 상태로 인식되므로, 정작 경제학이 설명해야 하는 제반 경쟁 행위라는 주제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또 비현실성이란 완전경쟁 상태에서는 모든 기회가 알려져 있고(정보가 완전하고) 자원의 이동성도 완전하기 때문에 거래비용이 없고, 더 이상 경쟁이 없기 때문에 경쟁의 출발점이 되는 재산권이 있든 없든, 또 누구에게 있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독점적 경쟁, 과점, 그리고 독점 등도 시장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경쟁시장과 그 이유는 다르지만, 하나의 상태를 뜻하기는 마찬가지다. 즉 독점은 하나의 기업을 산업으로 식별함으로써 산업 내 경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독점과 경쟁은 서로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독점적 경쟁은 완전경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모든 시장에는 경쟁적 요소와 독점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가하여 설명하려는 것이지만, 이 역시 더 이상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전경쟁이나 독점과 마찬가지로 상태를 의미한다.
판매자의 행위는 대부분 거래 상대방에게 경쟁자보다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것이다. 즉 ‘경쟁하다’라는 동사적 의미의 행위다. 그런데 시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행위를 이상한 ‘완전한 상태’를 뜻하는 완전경쟁을 기준으로 공정 또는 불공정 행위라고 판단하는 것이나 완전경쟁시장이 아닌 시장은 자원배분의 비효율이 존재하므로 ‘실패’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고 공정경쟁을 위해 취하는 법적 조치가 경쟁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라면 이는 불공정한 것이다. 공정거래법이나 상법 등을 이러한 각도에서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다. 경쟁이 ‘상태’가 아닌 ‘과정’ 개념으로 회복되지 않는 한, 정부간섭이라는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김영용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yykim@chon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