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국채발행과 가격차별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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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석
가격차별은 옳지 않은 경제적 행위인 것처럼 생각되기 쉽다. 아마도 ‘차별’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격차별은 상품차별과 함께 기업이 시장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효과적인 상품판매 전략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특정 삼성노트북을 일반시장 가격과는 다른 가격(보통 저렴한 가격)으로 대학생들에게 공급한다. 그 이유에 대해 경제학적 설명을 붙인다면, 대학에서의 노트북시장은 일반 노트북시장과 분리가 가능하고 그 수요가 일반시장의 그것보다 더 탄력적이어서 가격차별을 통해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격차별은 경우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적용될 수 있으며, 금융상품의 경우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정부는 채권을 판매할 때, 가격차별을 적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에는 그 발행을 주관하는 투자은행이 발행금리를 정하고 시장에 판매한다. 그리고 정부는 경매를 통해서 국채(국고채)를 발행하며, 이때 발행금리를 하나로 결정한다. 즉 정부는 일양가격경매(uniform-price auction)를 사용하여, 낮은 금리를 제출한 입찰자부터 발행수량이 소진되는 입찰자까지를 모두 낙찰자로 결정하고, 낙찰받지 못한 입찰금리 중 가장 낮은 금리를 발행금리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양가격경매의 도입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0년 7월 이전에는 차별경매(discriminatory auction)가 사용되었다. 금융사들이 제출한 입찰금리와 입찰수량에 대해 비록 낙찰자는 일양가격경매와 같은 방식에 의해 결정되지만, 발행금리는 각 낙찰자들마다 그들이 제출한 입찰금리로 결정되며 따라서 최대 낙찰자의 수만큼 다양하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정부는 국채발행 경매제도를, 2000년 8월 시점에서 바꾼 것일까? 일양가격경매가 차별경매보다 우월하다는 판단이 우연히 그 시점에 내려져서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두 가지 경매방식을 비교한 국내연구는 전무했었다. 경매방식의 전환에 대한 정부의 해명도 없었다. 결국 경매방식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만든 이유는 국내에서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 이유는 다른 데에 있는 것 같으며, 추측컨대 정부가 미국의 제도 변화를 우리의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1998년 8월 모든 종류의 국채발행제도를 일양가격경매로 완전히 바꾸었다. 이런 변화는 1992년 9월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이유는 1990년대 초 Milton Friedman(1991)과 Merton Miller(1991)의 주장을 재무성·증권위·연준위의 공동보고서(1992)가 전격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록 Friedman이 1960년부터 입찰전략의 단순성과 국채발행비용의 절감 등의 이유를 들어 일양가격경매의 차별경매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컨대 최근 발전된 연구는 일양가격경매가 특정 경우에는 차별경매보다 국채발행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Friedman의 주장을 반박한다. 이런 이유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에서는 여전히 차별경매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최근의 경매이론은 제3의 방식인 Vickrey경매가 앞의 두 경매방식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일양가격경매가 국채발행을 위한 최선의 경매방식이라는 주장은 그 유효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재정적자문제와 함께 재정지출 절감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는 현재, 국채의 발행비용 절감을 위해 어떤 경매방식이 효율적인지를 정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만일 국채발행시 가격차별적인 경매방식을 사용한다면 그 발행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이것은 국가재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계산을 해보면, 최근 3년간 연평균 5.5조원에 달하는 국고채 발행에서 연간 최대 약 2,200억원 정도의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효과는 기업의 자금조달의 경우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로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Google은 최근에 가격차별적 경매의 일종인 Dutch경매를 통해 주식을 상장시켜 1.6억 달러의 자금을 성공적으로 조달했다. 이 경우를 범례로 하는 주식상장 사례가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회사채 역시 가격차별적 경매를 사용하여 발행한다면 자금조달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자금조달에 가격차별적 경매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