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고속철도중간역증설 유감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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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고속철도건설은 인천공항건설과 함께 우리나라 교통관련 SOC 건설사업 역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이다. 이는 미래지향형 교통시설의 공급이라는 국내적인 의미뿐 아니라 동북아물류허브화정책의 추진이라는 대외적 의미도 큰 사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고속철도 건설사업은 정책 구상단계에서부터 도입타당성에 대한 많은 논란을 야기해 왔으며, 이후에도 사업계획의 잦은 변경과 사업비의 과도한 증액 등으로 인한 문제가 빈번하였다. 최근에는 작년 11월 고속철도중간역추가방침이 발표되어 논란을 야기시켰으며, 12월 말에 또다시 1단계 사업의 정차역 두 곳을 추가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물론, 중간역추가설치는 관련지역의 민원을 수렴하고 지역개발을 촉진하여 장기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인정된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정적 효과역시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중간역 추가방안은 고속철도가 지니는 당초의 도입목적을 대폭적으로 흐리게 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도입필요성에 대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추진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교통수요가 가장 많은 경부축에 ‘고속’의 대용량 교통수단을 공급하여 교통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함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입목적은 그동안 외적인 요인, 즉 정치적인 이유로 인한 노선변경, 등으로 많이 희석되어온 바 있다. ‘고속’철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안전과 환경문제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단거리로 건설하는 것이 상식이라 할 것인데, 현재 확정된 노선은 이런 점에서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여기에 중간역이 몇 군데 또 추가되면서 속도저하의 문제가 가중되는 느낌이다. ‘저속철’이라는 항간의 비판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비아냥으로만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정부는 속도저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중간역에 매번 정차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하였지만, 이 역시 그리 획기적이라고는 평가하기 어렵다. 이는 공급된 시설을 제한적으로 운영함에 따른 철도용량의 저하 및 저효율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하기 때문이다. 즉, 속도저하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 용량 및 효율을 희생시키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결국 정부가 제시한 대안은 단지 속도저하의 문제를 용량 및 효율저감의 문제로 전환시킨 것이 불과하다.
더구나 대략 4천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추가역사의 신규건설비용을 감안하는 경우에도, 중간역 추가설치 방안이 과연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철도사업은 도로 등 타교통수단과 비교할 때 편익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반면, 비용은 많이 소요되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고속철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여러 차례의 타당성검토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사료되지만, 이런 식으로 추가비용이 소요될 경우에도 경제성이 보장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간역의 추가설치로, 비용은 대규모로 소요되는 반면, 이를 상쇄할 만큼의 편익증가는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의 해명에 따르면 추가역의 설치가 ‘운영수입’이라는 편익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사업효과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설명이라 평가할 수 있다. 철도와 같은 교통사업의 편익 가운데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통행시간절감’ 편익인데, 중간정차역을 늘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운행시간이 증가하게 되므로 ‘통행시간절감’편익은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운영수입‘증가를 통한 편익증가가 ’통행시간절감‘편익의 감소를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면 총편익은 증가할 것이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고속철의 저속화·비효율화 문제는 현재의 우리나라 교통체계가 안고 있는 ‘고비용·저효율’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완화시키지 못할 것으로 인식된다. 이는 국가의 중장기 교통대계인 ‘국가기간교통망계획’에서 밝히고 있는 ‘저비용·고효율의 교통체계구축’이라는 목표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는 정책방향이라 할 수 있다.
금번 중간역추가설치 방안이 가져오는 경제외적 문제점은 정책의 잦은 변경에 따른 신뢰도 저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책이 민의를 수렴하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하다 하겠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장기 교통계획이 그때그때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빈번히 수정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되는 국가의 큰 계획이 본래의 의도대로 자리 잡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책신뢰도의 저하로 인하여 치루어야할 국내외적인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 추가역의 설치가 총선을 앞둔 선심행정이라는 비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향후에 다른 지역에서 중간역 설치를 추가적으로 요구해온다면 어떠한 명분으로 거절할 것이며, 이로 인한 국민화합의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또 동북아물류허브화 정책의지에 대한 대외적 신뢰는 어떻게 구축·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