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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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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출자와 투자는 별개인가

08.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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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익

‘출자총액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

‘출자는 투자가 아니다. 출자규제로 투자를 못하는 사례를 제시해 달라.’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하여 대기업과 공정거래위원회(이른바 ‘공정위’)가 논쟁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주장들은 다 일리가 있다. 공정위의 설명과 같이 출자와 투자는 다르다. 투자는 공장건설과 같이 설비 등의 실물자산을 취득하는 것이고 출자는 다른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이다. 한편, 기업의 불만처럼 출자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 출자가 투자인 것도 많다.


회사설립을 위한 출자는 사실상 투자


출자와 투자의 관계를 제대로 알려면 기업이 출자하는 목적과 그 결과를 봐야 한다. 기업이 출자하는 동기는 무역이나 건설 등의 사업부를 별도 회사로 독립시키거나, 외국기업들과 합작하여 새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생산규모를 늘리거나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기존 회사를 인수(M&A) 하기 위해서도 출자하고, 회사를 분사시키거나 지분을 가진 회사의 증자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출자한다. 경영권 방어나 전략적 제휴 등을 위해서 다른 회사 주식을 보유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출자이다.


먼저, 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경우를 보자. 기업이 출자하여 새 회사가 설립되면 그 회사는 설비를 구입하여 사업을 개시한다. 즉 투자가 이뤄진다. 사업이 잘 되면 증자를 통하여 자금을 조달하여 증설하는데, 이것도 투자로 이어진다. 이같이 회사설립이나 증자참여는 사실상 투자이다. 그래서 공정거래법은 SOC 민간투자, 신산업, 동종업종 등의 출자는 규제하지 않는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많은 회사들도 다른 기업들의 출자로 설립되었고, 지금은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하여 한국의 투자를 선도하고 있다.


M&A를 위해 출자하는 경우는 어떨까? 기업이 다른 회사를 인수하면 그만큼 설비가 늘어난다. 현대자동차는 울산공장을 증설할 수도 있었지만 기아차동차를 인수하여 설비를 확장했다. 출자로 설비가 늘어났으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분명히 투자이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투자로 보지 않는다. 기존의 설비(혹은 회사)를 다른 회사가 인수한 것이므로, 주인만 바뀌었을 뿐 국가 차원의 투자가 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같이 M&A를 위한 출자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투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성숙단계에서는 M&A가 투자의 대종


하지만 인수된 회사들이 성장하면서 증설하므로 경제학적인 투자가 일어난다.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 유공(SK 전신), 대한이동통신(SK텔레콤) 등 많은 기업들은 다른 회사로 인수된 후에 투자가 늘어나고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경제가 성숙단계에 들어서고 경쟁이 격화되면 중복 혹은 과잉설비가 발생한다. 이 단계에서는 기업은 회사를 설립하여 신규사업에 진출하기보다는, M&A를 통하여 새 사업에 진출하려고 한다. 즉 구조조정이 활발해진다. 설비확장이 용이하여 수요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고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국가 차원에서도 신규투자보다는 구조조정이 바람직하다. 세계적인 초일류기업들은 심지어 국가간의 M&A를 활용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M&A가 대기업 출자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2004년도 공정위 통계를 보면, 출자규제를 받는 대기업들의 출자증가 요인은 M&A가 53%로 가장 많고, 증자참여 35%, 회사설립 3% 등의 순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회사설립이 출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빠른 변화이다.


이밖에 지배력 확장이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출자는 투자와 무관하다. 하지만 경영권 안정 없이는 경영자들이 투자를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이같은 출자도 나중에 투자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자규제는 신규사업 투자의 장애요인


기업은 산업의 부침에 맞추어 계속 새로운 사업분야에 진출해야 하는데, 출자규제를 받는 기업 중 출자여유가 없으면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없다. 물론 신산업분야 출자는 출자규제를 받지 않지만, 요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투자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정위는 출자와 투자는 별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최근 출자총액제한에 관한 영문표기를 바꾸었다. 그간 ‘Investment Ceiling’(투자한도제)이라고 했으나 투자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 ‘Restrictions on total amount of share holding of other companies’(주식보유한도제)로 변경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회사 주식소유도 투자’라는 것은 국제기준이며 학술적으로 확립된 개념이다. 즉 우리의 외국인 투자법은 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한 것이 외국인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이며, 통상 10% 이상 지분을 취득하거나 그 이하라도 임원파견 등이 수반되면 직접투자로 본다.


기업의 출자 중에 일부는 경제학적인 투자가 아니라고 하여 기업에게 경제학적인 투자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국가적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기업이 아닌 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신종익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jishi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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