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글쓰기 표절기술의 百態
08. 4. 30.
2
박승록
최근 한국사회에서 표절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있다. 당연 표절의 시비에 휘말린 사람은 큰 낭패에 처하게 된다. 사실 표절이란 경제행위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도둑질하는 행위이다. 글쓰기에 있어서의 표절은 다른 유명제품의 복제품 즉, “짝퉁”을 만드는 행위와 동일하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짝퉁제품의 생산이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듯 표절행위도 사회 발전에 따라 당연히 금기시된다. 요즘 표절행위가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도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표절은 범죄”라는 외국의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학계, 언론계, 종교계 등 소위 글 쓰는 영향력 있는 분들 중 상당수는 범죄자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자! 그럼, 글쓰기에 있어서 표절의 기술을 살펴보자. 영화 “싸움의 기술”은 한국의 “글쓰기 표절 기술”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이다. 반도체, LCD, 자동차에 비견할 만한 경쟁력을 구비한 기술이다.
첫째, 생계형 표절이다. 사내보고서 작성 등에서 상급자에게 자기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표절 행위이다. 원본과 표현만 달리 기술했을 뿐 내용은 거의 같다. 외견상 달리보이지만 아이디어, 핵심내용, 시사점 등은 동일하다. 몇몇 논문을 짜깁기하면서 표절을 피하기 위한 문장개조가 이루어진다. 논문작성에서도 정작 가장 많이 의존한 논문은 의도적으로 빼버리는 형태의 표절도 있다. 주를 달더라도 인용자가 크게 기여한 부분보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 주를 붙인다. 원저자의 기여도는 작아지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자기의 것으로 크게 부각된다. 원저자가 유명인사일 경우 오히려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논문에 권위를 더하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원저자는 유명하지 못한 죄(?)를 감수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한 표절행위이다.
둘째, 좀도둑형 표절이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자주 활용하는 기법이다. 주로 부하직원에게 글을 부탁한다. 다른 부하직원에게는 교정을 보게 한다. 그 다음은 당연히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간혹 원고료를 건네는 경우도 있지만 양심적인 인사들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지도교수와 합의하에 부하직원에게 논문을 대필시키는 경우도 있다. 지도교수가 적극 논문대필을 권유하거나 대필자를 소개하기도 한다. 논문 대필해 준 부하직원은 당연히 인사고과와 진급에 있어서 상당한 혜택을 입게 된다. 약소하나마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보다 큰 혜택은 직장에서의 인사고과를 통한 보상이다. 주위직원들도 이를 알고는 있으나 감히 문제화시킬 수 없다. 표절 행동이 간사하고, 은밀하며, 치졸하다.
셋째, 말타기형 또는 말태우기형 표절이다. 자신의 우월적 직위를 이용하여 타인의 글에 그냥 이름을 올리는 경우이다. 북방 기마민족의 후손답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표절 기술이다. 특별한 지도 없이 지도학생이 쓴 글에 자기이름을 올리거나 단독으로 글을 발표하는 경우이다. 지도해 준 학생의 후속 논문이나 저술, 번역서에 자기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간혹 노조나 동료들을 통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반면 말태우기형 표절도 있다. 지도학생이나 연구원이 지도교수나 상급자의 이름을 자발적으로 적극 실어주는 경우이다. 말 그대로 말을 태워주는 것이다. 일종의 아부에 속한다. 조직 내에서 또는 다른 면에서 보상을 기대하거나 지도교수의 명성을 이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상납행위이다. 간혹 논문 발표건수를 늘리기 위해 서로 상대방 이름을 공저자로 올려주기도 한다. 논문 한편을 쓸 수 있는 능력이면 이렇게 2-3편 쓰는 것도 가능하다. 복합형으로 “타고 태워주기형”이다. 당연히 연구비를 받아쓰고 연구경력을 부풀리는 데 도움이 된다.
넷째, 시장경제형 표절이다. 글을 돈 주고 사는 것이다. 시작단계에서부터 적절한 금전 보상을 매개로 한다. 역설적으로 금전적 보상관계이기 때문에 깨끗한 거래이다. 석·박사 학위를 돈 주고 사는 등의 부도덕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거래이기 때문에 운 나쁘게 들키지 않으면 무사통과이다. 시장경제형 표절의 또 다른 형태는 아예 글을 써줄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다. 모창가수가 있듯이 기가 막히게 유사한 필체로 유명작가들의 작업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유명인사의 문하생으로 글을 배운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 문하에서 일한 것조차 영광일 수 있으니 문제시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섯째, 무대뽀형 표절이다. 말 그대로 마구 베끼거나 번역하는 “배째라”식 표절기술이다. 간혹 서문에는 “그 동안 학생들이 원하여도 적절한 교과서가 없어서 애처롭게 생각했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이 책을 저술하게 되어서 기쁘기 한량없다”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정작 책 내용은 외국 책을 번역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원저자가 중시한 내용은 어려워서 아예 빼버리기도 한다. 또 원저자가 만든 용어, 처방이나 책자 등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고, 또 여기에 다른 저자의 것을 합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시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유형은 거의 절도수준에 이르지만 해외인사가 한국말을 모르는 상태라서 어물쩍 넘어간다. 때로는 남의 원고를 그냥 절도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제자나 후배의 저술이 마음에 들 경우 원고를 빌려서 자기 것인 양 곧바로 출판사로 달려가는 경우이다. 간혹 어떤 자료나 책자는 아예 원저자의 이름을 자기 이름이나 기관이름으로 대체한 후 생색을 내거나 연수교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모르는 한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간혹 원저자가 항의해도 실무자의 실수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여섯째, 도제형 표절이다. 학계에서 교수와 제자들 간에 이루어지는 표절이다. 서문에 통상 “본 저서가 나오기까지 고생해 준 ○○군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이 있기는 하나 번역을 하건, 저술을 하건,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건 간에 조교들의 공동작품을 자기이름으로 편취하는 표절이다. 조교로서의 신분, 연구비 지원, 향후 전임강사나 교수라는 직분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투자행위이다. 스승과 제자로서의 원만한 관계설정에 필요한 고상한 예절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는 특정 유명인사를 정점으로 도제화되어 끈끈한 분파를 형성하기도 한다. 서로 받들고, 도와주는 과정에서 표절을 당하고 표절을 하게 되는 표절기술이다.
세상 어디에 이런 다양한 표절기술이 있는가? 어떤 기술에도 도가 통하면 도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차제 표절이란 도둑질에도 도(道)를 세워보자. 말 그대로 “세상에 도가 아닌 게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남의 것이라면 의롭지 않게 표절하지 않는 것은 성(聖)이다. 먼저 알아서 철저히 인용하는 것은 용(勇)이라 할 만하다. 표절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분명 의(義)로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표절을 하더라도 문제소지가 있을지 미리 판단하는 것은 지(知)라 할 수 있다. 표절해서 벌어들인 것을 고루 나누어 갖는 것은 가히 인(仁)이라고 할 만하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지 않고서 감히 "표절의 기술"을 논한다면 대도(大盜)는커녕 좀도둑으로 전락할 것이니 천하의 이치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