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전력산업 구조개편, 다시 시작해야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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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훈
전력산업의 구조개편 계획은 민영화를 통한 경쟁 도입을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국회에서 여야의 합의에 의해 법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난 2001년 한국전력공사에서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의 발전자회사를 분리하여 독립적인 회사로 만드는 과정까지는 비교적 순탄하게 지속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 다시 제기된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는 암초에 부딪혀 전면 정지해 있는 상태이다. 마치 강을 건너는 도중에 엉거주춤 서 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바지는 걷고 신발은 머리위에 얹은 채 넘실대며 흘러가는 강물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앞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뒤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에서 몇 년째 버티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강을 건너기 전까지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체제였다. 국가가 소유하는 단일 공기업이 시장을 독점하여 공급하는 것이다. 이런 체제는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고, 투자의 불확실성을 감내해낼 수 있다는 이점은 있지만 자원배분의 비효율성과 시장의 왜곡이 불가피하였다. 공적 조직의 비효율성과 정부정책의 우선순위 오류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급속한 경제발전기 동안 불가피하게 선택한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전 세계 전력산업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전력부문도 상당한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전력거래의 새로운 방식이 개발되어 공기업 독점을 유지하면서 비효율을 감내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쟁을 도입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나라별로 상황이 다르고 정책추진 역량도 달라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실패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도 있다. 아직 전 세계적인 실험이 진행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결론내리기는 다소 이르지만 민영화를 통한 경쟁과 효율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 있지만 경쟁과 민영화를 통한 시장기능의 회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전력산업은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데 지혜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엉뚱하기 그지없다. 강을 건너다 말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며, 과도기적인 비용을 막대하게 지불하고 있다. 그것도 언제까지 이렇게 가는 것인지 기약도 없이 말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정부다.
에너지를 둘러싼 여건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구조개편의 방향을 결정하던 1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에너지 수입국으로서 에너지 안보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고유가와 기후변화 협약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에너지 투입을 위한 직접비용과 에너지를 사용한 후의 간접비용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에너지가격의 상승이 불가피하다. 지금도 비싸지만 더욱 비싼 가격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다. 에너지 안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에너지 시장의 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반적인 가격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에너지원별로 상대가격 구조가 크게 바뀔 전망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에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에너지원 각각의 가격변화 정도와 온실가스 배출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불리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충격이 격렬하고 에너지 안보에 심대한 위협이 있을 때 우리의 에너지 산업은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에너지 시장의 변화는 우리 경제에 큰 어려움을 줄 것은 분명하다. 과거와는 달리 조금 참으면 곧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고유가도 그렇고 기후변화협약은 더욱 지속적으로 이어질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가장 유연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가 우리 앞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의 방식, 즉 국가가 소유하는 독점 공기업 형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경직적이다. 시장기능이 마비된 이 구조는 외부적 충격에 가장 취약하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미루거나 확대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강을 건너다가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강을 건너다 멈춰 서 있는 지금의 상태는 더욱 위험하다. 강물은 불어나고 물살은 거세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허리까지 찬 강물은 곧 가슴에 이르고 마침내 우리의 키를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자리에 서 있지도 못한다. 헤엄도 미숙한데 어디론가 원치 않는 곳으로 떠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강물이 불어나는 속도가 매우 위협적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구조개편은 서로 다른 여건 하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어려운 조정과정을 거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상황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에는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진화되는 전력시장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소화하여 올바른 정책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구조개편을 시작하던 10년 전보다는 훨씬 많은 정보와 새로운 기술,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었다. 다시 시작해야 할 좋은 시점이다.
손양훈(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yhsonn@inche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