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산부족(The Shortage of Assets)의 시대
08.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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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석
최근 모건 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브 로치(Steve Roach)나 MIT 대학 경제학과의 리카도 카발레로(Ricardo Caballero) 교수는 세계적인 자산공급 부족 현상이 지금의 세계경제를 설명하는 핵심요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카발레로 교수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나 최근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이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지는 금융시장 위기 역시 ‘자산부족’(the shortage of assets) 현상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자산수요가 그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준보다 과도한지, 아니면 자산공급이 전례 없이 부족한 것일까? 어느 쪽이 옳다 해도 결국 초과수요라는 갭을 조정하지 못하는 오늘날 글로벌 자산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인데, 왜 자산의 수요와 공급은 일치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한편 국내에서는 증시 상황이나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유동성 과잉이 원인이니, 이자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과연 왜 그 많은 유동성이 실물경제에 기여하는 생산적 자본과 관련된 자산보다 자본이익만을 노리는 투기적 자산수요에 몰리는 것일까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날의 생산과정은 과거와 비교할 때, 생산에 투입되는 생산요소로서의 자본의 양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구글이나 MS사에서 필요로 하는 건물, PC 등 물리적 자본의 규모는 그 회사들이 창출하는 수익 규모에 비해 낮다. 이는 과거 포드 자동차 회사나 보잉 항공사가 자동차나 비행기 생산을 위해 대규모 부지에 공장을 건설하고 생산된 항공기나 자동차를 보관하고 운반하는 물류 시스템을 건설하던 점을 고려할 때 잘 알 수 있다. 또한 지식이나, 인적자본이 설비나 공장 같은 물리적인 자본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에 투입되던 물리적 자본생산요소의 작은 부분만으로도 필요한 생산활동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과거에는 대출을 받아 사업용 설비나 시설을 장만하려는 동기가 강했는데 이제는 물리적인 설비나 시설의 생산성이 향상하여 자본의 절대적 양을 늘릴 필요가 없거나, 혹은 업종에 따라서는 그러한 시설, 설비에 대한 필요성 자체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 따라서 자본이라는 생산요소의 조달을 위해 공급되던 자산도 감소하게 되었다.
반면 ’90년대 중후반 소위 ‘New Economy' 시절 이후 생산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소비하고 남은 잉여 역시 크게 증가했으며, 이처럼 증가한 잉여생산을 재원으로 하는 투자수요 역시 크게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적 자본의 조달을 위한 자산 공급은 줄어들면서 자산의 초과수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순수한 의미에서의 생산적 자본이 아니더라도 투자대상이 될 만한 다양한 형태의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다.
위 그림은 미국의 (은행을 제외한) 주요 금융사들의 대출을 용도별 비중으로 나타낸 것이다. ’85년 10%에도 못 미치던 부동산 취득용도 대출비중은 최근 2007년 6월에는 3배 가량 증가한 30%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 소비자신용 용도 대출은 지난 20여년 동안 40% 내외로 안정적이며, 사업용 용도 대출은 50%에서 30%로 하락했다. 이 그림에 따르면 부동산 용도 대출 비중은 특히 ’96년과 ’97년에 현저히 증가하여 이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간접적이나마 사업용 투자 수요와 부동산 투자 수요에 대한 비중이 역전됨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는 바로 생산요소로서의 자본과 상관없는 자산, 즉 주택,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수요가 ’90년 후반 들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90년대 후반 이후 글로벌 경제 불균형(global imbalance) 문제도 버냉키 의장이 표현한 아시아 경제의 과도한 저축(gluttonous savings)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즉 어느 특정 지역경제의 지출이 부족한 탓에 그 지역의 잉여생산을 미국이 다 처치했다기보다는 투자할 만한 것이 존재하면 대상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미국의 자본이 이동한 것이 오늘날 세계경제 불균형의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국의 자산공급이 자산수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그 초과수요를 아시아 등 외국지역경제에서 채우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 실수요와 상관없이 움직이던 국제원자재 가격 변동이나 ’90년대 이후 이머징 마켓에서의 증시 붐은 미국계 사모펀드과 같은 거대한 자본이 특정 품목과 지역으로 이동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자산에 대한 초과수요는 비단 미국의 문제인가? 외환위기 이후 주춤했지만 한국의 자본 역시 투자할 대상을 찾는데 열중해 왔다고 본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생산을 위한 재투자 부족과 같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환란 이후 영미식 기업재무구조로 전환하는 추세 속에 건실한 재무구조와 주주 입장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소극적 경영에 따른 재투자 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위 부동산, 건물, 골프 회원권 등을 대상으로 한 투기적 성격의 ‘투자’까지 포함한다면 한국의 투자수요는 오히려 ’90년대 중후반 이후 증가했을 수 있다. 또한 원화 가치 하락으로 가격이 떨어진 한국의 각종 자산이 앞서 언급한 대로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던 미국 자본을 끌어들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자산에 대한 투자수요가 급증한 반면 구조적으로 생산적 자본 조달을 위한 자산 공급이 부족했다고 한다면 자산시장이 과연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경제원론 교과서대로라면 초과수요가 발생했으니 가격은 하락하고 따라서 자산 수요는 줄어들고 공급은 늘어나서 결국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과서의 경우와 달리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배경 하에서 투자수요의 투기적 성격이 강해질 경우, 초과수요로 가격이 오르면 가격상승에 따른 가격차익을 노린 수요가 오히려 더욱 증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경우에 있어서, 가격상승을 노렸으나 가격이 하락하는 등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리고 기대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리스크는 투기성 자산에 대한 수요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각종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믿게 되면 투기적 수요를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각종 파생상품 시장은 오히려 리스크 예방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파생상품 자체가 또 하나의 가격차익의 원천이 되어버렸다. 지난 9월 포춘지 역시 최근호에서 자본시장의 발달과 함께 나타난 파생상품시장이 오히려 리스크를 가중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