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우리의 노동현실과 향후 과제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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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헌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됨에 따라 사회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다. 그런데 최근 노동계에서 나오고 있는 일련의 발언들의 수위가 심상치 않아 경제계를 긴장케 하고 있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동계의 한 지도자는 전기와 가스를 끊고 비행기를 세우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발언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변치 않는 우리나라의 후진적 노사관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참여정부 출범 후 지난 5년간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그 단적인 예로 이전 정부에 비해 빈도수와 강도 면에서 더욱 격렬해진 불법파업을 들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두산중공업과 화물연대의 불법파업으로 시작된 불법파업 건수는 지난 5년간 모두 142건에 이르렀고, 파업지속일수도 이전에 비해 두 배 수준인 39일에 육박했다.
또한 노동부가 발표한 노동통계연감에 따르면 2003~2005년간 1,069건의 노동관련 분규가 발생하여 빈도수에서 국제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가까운 이웃나라이자 한국의 최대 경쟁국 중 하나인 일본의 경우 노동관련 분규건수는 2000년 이후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이고, 통계상 가장 최근인 2004년에는 51건의 분규만을 기록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노동관련 분규건수는 2000년을 기점으로 일본을 추월하여 지속적인 상승추세를 보여 2004년에는 일본의 9배가 넘는 462건을 기록했다. 다행히 2005년 이후 그 빈도수가 다소 잦아들긴 했으나 그 수준은 여전히 일본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이외에 노동통계연감에 수록된 주요 국가들 중 최근 우리나라보다 분규건수가 많은 나라는 호주(1,835건, 2003~2005년간)와 요즘 들어 강성노조의 개혁정책 저지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프랑스(2229건, 2002~2004년간)뿐이다. 그나마 호주의 경우는 파업으로 인한 총 손실일수가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고 있다.
빈번한 파업과 더불어 노사분규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 분야의 임금은 해가 갈수록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3~2006년간 우리나라 제조업 부문 시간당 실질임금이 연평균 5.3% 증가하여 구매력을 감안한 실질 1인당 GDP 연평균 증가율인 3.8%를 껑충 뛰어 넘었다. 일본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실질 1인당 GDP는 연평균 2.2% 증가한 반면, 제조업 부문 시간당 실질임금 증가율은 연평균 0.18%에 불과했다. 일본과 비슷한 경제성장세를 보인 미국과 영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임금 증가율이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강성노조로 유명한 프랑스의 경우에도 1인당 실질 GDP가 연평균 1% 증가했는데 반해 임금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이 같은 통계수치는 한국의 제조업 분야 임금이 다른 나라의 유사직종이나 우리나라의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제조업 분야 임금이 급등하는 반면에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경쟁력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꼴찌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원(IMD)의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노사관계 측면에서 2003년 이후 조사대상 국가 중 지속적으로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 가장 큰 원인으로 빈번한 파업과 경직적인 노사관계가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계의 강성투쟁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어줄 수 있는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큰 장애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다. 2005년에 발표된 한국국제노동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투자기업 경영자의 38%가 한국의 불안한 노사관계가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덴마크의 완구회사 LEGO가 2005년에 경기도 이천공장의 폐쇄를 단행했고, 2006년에는 소니사가 경남 마산공장의 가동을 중지했다.
노동계의 지나치게 급진적인 태도는 단순히 일개 회사의 경영을 위태롭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노조의 불법행위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연간 8조 원에 이르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1%p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경제가 x% 성장하면, 1인당 소득이 두 배가 되기까지 70/x년이 걸린다는 법칙을 한국의 경우에 적용해 보자. 만약 우리나라 경제가 앞으로도 지난 5년처럼 연 4%대로 성장한다고 할 경우, 우리 국민의 소득이 두 배가 되려면 약 17.5년이 걸린다. 그러나 만약 노사관계가 극적으로 크게 개선된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5%대로 높아지고, 우리 국민의 소득은 14년 만에 두 배가 된다. 결국 현 경제상황에서 노조의 불법행위는 국가 전체의 후생을 3년 반 뒤처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노동계에서는 자신들의 과격한 집단행동을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구성원 간 공평한 경제이익 분배를 위해서라고 정당화한다. 그러나 세계은행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노동계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세계은행의 2007년 소득불평등지수를 살펴보면, 그 값이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평등하고, 10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불평등한데, 우리나라는 31.6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같은 아시아 경제권인 홍콩(43.4)이나 싱가포르(42.5)는 물론 프랑스(32.7), 미국(40.8), 영국(36), 캐나다(32.6) 등 주요 선진국보다 나은 수치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도 통계 대상국가 126개국 중 23위로 우리나라가 선두그룹에 속해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소득분배가 비교적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동계의 급진적, 경직적 노사관은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전통적 지지기반까지 약화시키고 있다. 노동연구원이 조사한 노사관계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따르면, 각종 노사 분규에서 근로자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1989년의 67%에서 2007년에는 41.3%로 크게 줄었다. 또한 근로자가 기업으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1989년에는 3분의 1만이 그렇다고 했으나, 2007년에는 과반수가 넘는 52.3%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고질적 노사관계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수많은 이익집단의 이해가 걸려 있고, 노사 간 상호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손쉬운 해결책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2007년 세계경제포럼 보고서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노사관계 개선의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것은 정부의 역할에 달려 있다. 건전하고 생산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 우선 정부가 분명하고 명확한 심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노사를 불문한 불법행위의 엄단과 엄정한 노사관계의 법치화로 노동시장의 질서가 확립될 때, 노사 간 대타협도 가능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