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제조업 공동화, 어떻게 할 것인가?
08.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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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헌
최근 몇 년 새 국내 제조업의 활력저하로 인해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되고 고용난이 가중되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조업 부문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활력이 저하되는 현상은 산업구조의 고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산업공동화’라고 불린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산업공동화를 ‘국제경쟁력이 상실되면서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와 동반하여 산업 혹은 기업이 소멸하거나 해외로 이전됨으로써 국내 산업기반이 없어지고, 이를 대신할 신산업의 창출이나 산업의 고도화가 일어나지 않아 산업구조에 공백이 생기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산업공동화의 정의는 우리나라의 현 경제상황을 설명하는 것과 꼭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는 아직 염려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조업 내에서의 산업구조 고도화로 인해 국한된 공동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0~2007년간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에서 17.6%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제조업의 실질부가가치 비중은 29.4%에서 34%로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추세는 제조업이 고부가가치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로 이행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산업별로 볼 경우 이러한 추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1981~2007년간 의복(-83%), 가죽(-88%), 섬유(-77%), 목재(-62%) 등 경공업 산업의 비중은 크게 감소한 반면, 화학제품산업(146%), 영상·음향 및 통신장비(1925%), 의료·정밀기계(215%)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의 비중이 대폭 확대되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 동향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는 2003년 59억4천만 달러에서 2007년 276억4천만 달러로 급증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 비중은 2000년 14%에서 2006년에는 33%로 크게 늘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중국으로 이전한 기업들의 대다수가 임금 경쟁력과 노동력 확보가 기업 이전의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었다고 대답했다. 종합해 볼 때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 구조는 고부가가치 기술집약 형태로 이행하고 있으며, 과거 기간산업의 역할을 담당했던 노동집약적 중저급 기술 산업이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부상에 따라 국제경쟁력을 상실하면서 부분적인 산업기반 소실과 함께 고용창출 여력의 저하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조업의 이러한 구조변화는 경제발전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추세이므로, 이를 억제하는 것보다는 순응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일본과 대만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먼저 대만의 경우를 살펴보면, 대만정부는 자국의 산업공동화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고급 기술 산업의 중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억제했다. 그러나 대만기업들은 홍콩이나 동남아를 경유하여 중국 진출을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2001년 대만이 WTO에 가입하면서 이러한 억제정책은 무효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만정부는 인식을 전환하여 2002년 ‘Challenge 2008 Program for National Development Priorities’란 제하에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산업정책 방향을 설정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다방면에 걸쳐 대만경제의 체질개선을 꾀하고 있는데 투자규제 완화, 중국과의 관계 촉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도 대만과 마찬가지로 인위적인 산업 유출 억제정책보다는 사회기반시설의 효율성 제고, 신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와 기업의 설비투자 확대, 외국기업 유치 촉진방안, 교육개혁을 통한 기초과학연구 인력 양성 등의 경제전반에 걸쳐 포괄적인 정책들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대만과 일본의 경험은 제조업의 구조변화에 따른 부분적 공동화 현상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산업에 대한 지원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구조변화의 촉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투자와 무역의 확대를 통한 신성장 동력 확충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해 줄 기술개발 역량의 심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투자와 무역의 확대는 관련 규제제도의 합리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기술개발 역량의 심화는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한 교육제도의 개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제조업 구조변화에 따른 공동화 현상은 여러 다양한 대내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결과이다. 또한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대비책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국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응방안은 규제와 교육제도의 개혁이 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시켜 나갈 수 있다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우리에게 오히려 좋은 약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phkim@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