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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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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기업가는 소중한 자산이다

08.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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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삼성그룹 경영쇄신 방침의 일환으로 이건희 회장이 일선에서 퇴진했다. 흔히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경영자로서의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가로서의 역할도 했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는 기업가로서의 역할을 접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업가와 경영자, 그리고 자본가는 수행하는 기능 측면에서 서로 다른 개념이며, 이건희 회장의 고유 기능은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자본없는 순수 기업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기업가 정신이 없는 순수 자본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 기능은 정의상 다르지만 하나처럼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로스바드(Rothbard)는 커즈너(Kirzner)와는 달리 기업가-자본가(entrepreneur-capitalis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시장경제는 경영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투기·중재 등의 위험을 떠맡는 행위를 의미하는 기업가 정신에 의해 작동한다. 기업가란 불확실한 상업세계에서 미지(未知)의 이윤 기회를 찾아 나서는 능동적인 행동인(acting man)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가는 경영자가 수행할 업무를 결정한다. 기업의 설립과 폐쇄, 생산라인의 신설과 폐쇄를 결정하는 사람은 기업가이지 경영자가 아니다. 기업가의 이런 기능을 강조하고 혼동을 피하기 위해 미제스(Mises)는 프로모터(promote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시장가격은 각 개인의 가치와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과정(process)의 산물이며, 이러한 과정을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기업가다. 기업가는 이윤을 얻기 위해 시장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주도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하며, 이런 일을 잘 수행하는 기업가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많은 이윤을 얻고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촉진한다.


시장경제에서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잘 작동하는 자산시장이 있어야 한다. 생산요소에 대한 사유 재산권이 없으면, 자본재에 대한 시장가격이 없고, 기업가가 여러 가지 생산 기술들의 상대적 효율성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소비재 시장이 존재하더라도 그러한 소비재를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자본재에 대한 의미 있는 가격을 설정할 수 없다. 기업가가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생산구조를 조정해 나가는 수단이 되는 이른바 경제계산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시장경제 체제의 진정한 기초는 상품시장이나 노동시장 또는 경영시장이 아니라 기업가의 판단이 실행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자본시장이다.


상업 세계를 비롯한 인간 세계에는 물리학의 세계에서처럼 규칙적인 함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업가 정신은 과학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통찰력의 문제이며, 기업가적 행동의 결과인 이윤이나 손실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기업가가 예리한 통찰력으로 불확실성을 성공적으로 떠맡으면 이윤을 얻고 실패하면 손해를 본다. 이윤과 손실은 기업가가 소비자의 만족에 공헌한 평가를 반영하며, 따라서 기업가의 성공과 실패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소비자다. 성공한 기업가에게 자원 사용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경제학에서는 금전적 이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윤은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라 종전의 상태보다 더 높은 만족을 가져오는 심리적 요인을 포함한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기업가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고작 경영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때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름 아래 전문경영자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제스는 강력한 힘을 가진 경영자들의 출현은 방해받지 않은 시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결과라고 설파한 바 있다. 로우(Roe) 역시 강력한 경영자는 시장 과정에서 진화한 현상이 아니라 기업의 소유와 지배에 관한 법적 제약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당면한 문제는 경영자의 퇴진이 아니라 기업가의 퇴진이라는 데 있다. 성공적인 기업가의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제력 집중현상과 기업지배구조 등을 둘러싼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상업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업가를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김영용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yykim@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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