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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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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오바마 당선과 북한의 행보

08.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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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호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마가 당선된 이후 북한은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내년 초 오바마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북미관계의 새로운 틀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계산아래 선제적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동조하여 일각에선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밝힌 최근의 조치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2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을 통한 모든 육로통행을 엄격히 제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을 겨냥한 조치이며,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이는 남한 내 갈등을 조장하는 등의 위기의식 고조 전략을 통해 오바마 신정부와의 협상 전 분위기를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얻는 것은 무엇이며, 잃는 것은 또 무엇인가?

개성공단은 2004년 12월 처음 제품 생산을 시작한 후 2008년 8월 현재까지 누적 생산액이 4억4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표적인 남북경제협력 사업이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한 가장 이상적인 남북 간 상생의 경제협력 모델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또한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와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상징적인 사업으로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경의선 도로를 통해 매일 1천명과 600대가 넘는 차량이 드나드는 곳이다.

개성공단 사업은 비단 남북 간 경제협력 사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인 관심이 이미 집중되고 있는 사업이고 향후 북한이 개방하여 외국의 자본을 유치할 경우 외국의 잠재적 투자자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업이다.

그런데 이 개성공단 사업이 여기서 중단된다면 개성공단에 진출한 남측 기업들만 낭패를 보는 것이 아니다. 지난 수 년 간 남북 화해와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남북 당국의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 물론 이제 겨우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해제 성과를 거두어 본격적으로 해외 자본 유치를 눈앞에 둔 북한도 외국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외자 유치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입장에선 향후 있을 오바마 신정부와의 협상에서 더 큰 것을 얻어내면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은 역시 “Too risky!”이다.

우선 미국의 대북정책이 오바마 신정부의 최우선 과제일 수가 없다. 특히 경제위기 탈출 등 현재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대북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55년간 지속되어 온 한미동맹이 오바마 신정부에서 일거에 무너질 수 있는 가벼운 관계는 더더욱 아님을 북한은 이해해야 한다.

북한은 아마 클린턴 정부 말기에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춤까지 춰가며 화해무드를 만들고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기 말 방북을 꿈꾸던 상황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임기 내내 대북 강경 정책을 고수하다가 지난 10월 테러지원국 해제를 강행하며 북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것에 상당히 고무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제 오바마 신정부가 들어서면 모든 것이 자신들의 뜻대로 될 것으로 한껏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클린턴, 부시의 임기 말 정책과 오바마 신정부의 임기 초 정책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임기 말 일종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서두르는 정책과 임기 초 우방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미국의 전통적 외교정책 간의 차이를 말이다.

또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비핵, 개방, 3000’은 오바마 신정부가 추구할 대북정책과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오바마 신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교과서라 불릴만한 ‘피닉스 이니셔티브(Phoenix Initiative)’는 전 세계 차원의 비핵화를 신정부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제시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자국 내 7000여 개의 핵무기를 1000개 정도로 감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오바마 신정부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지금의 부시 정부보다 오히려 더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는 그저 손 놓고 있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정책만 믿고 미국이 우리 정부의 정책을 당연히 최우선적으로 참조할 것이라는 자세는 더 위험할 수 있다. 오바마 신정부의 외교정책, 특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책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오바마 신정부의 한반도 정책과 공조를 이룰 수 있을지 확실한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전제로 우리 정부는 오바마 신정부와 한미동맹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 즉 미국은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요구할 것이고, 우리는 적어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는 우리 국가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반영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최근 대내외 정세를 기회로 즐기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향후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바른 예측을 해야만 한다. 오판으로 인해 일을 그르친다면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연호 연구위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yhchung@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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