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전속고발권 폐지는 시기상조다
09.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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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규
최근 의회 일각에서는 공정거래법상의 ‘전속고발제도’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제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공정거래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일반 형사범죄에 적용되는 검사의 공소권은 제약을 받으며,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는 공정위가 정책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여기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는 법 제66조와 제67조에 열거되어 있는데,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부당 공동행위·불공정거래행위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전속고발제도를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국민의 경제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를 과잉처벌하면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경쟁법 위반행위의 특성상 형사처벌이 부적절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문기관의 판단을 거쳐 중대하고 명백한 위반행위만 형사처벌하도록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 일각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공정위가 형사처벌 여부에 관해 재량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내지 재판절차상의 진술권이 침해될 수 있으며,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피해자와 일반범죄 피해자 간의 차별대우로 인해 국민의 평등권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의 공소권을 제약하여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하고,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을 경우에는 위반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전속고발제도는 이와 같은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입법당시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고, 헌법소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1995년 7월 이 제도를 합헌인 것으로 판시하였으며, 다만 일부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스스로의 고발의무를 명시하고 검찰총장에게 고발요청권을 부여하는 한편, 고발지침을 마련하여 고발권행사 기준을 구체화·객관화하였다.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제도가 합헌이고 제도보완이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 이 제도의 입법 타당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타당성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검토되어야 한다. 첫째,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는 반드시 형사처벌해야 하는가? 둘째, 공정위가 고발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때 피해자에게는 어떠한 구제수단이 보장되어 있는가? 셋째, 이 제도를 폐지했을 때 법무부나 검찰은 법 위반행위의 경제적 효과 및 형사처벌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가?
우선 경쟁법 위반행위에 대해 반드시 형사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제도를 달리하고 있다. 독일·스위스·스페인·이탈리아 등에서는 경쟁법 위반행위를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셔먼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하지만 사안이 중대하고 위법성이 현저한 담합행위 등에 국한한다. 일본은 우리와 같이 전속고발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하지 않고, 다만 시정조치 불이행에 대해서만 형사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도의 존폐와 관계없이 형사처벌의 대상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의 피해자는 그 사실을 공정위에 신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조사를 하지 않거나 무혐의, 경고처분 등으로 사건을 종결한 경우 피해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구제수단이 없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경쟁법 위반행위에 대해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는 물론 ‘사인의 금지청구’ 등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피해자 구제수단을 좀 더 확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경쟁법 위반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그런데 미국 법무부의 독점금지국은 경쟁법의 집행기관으로서 세계적으로도 가장 전문적인 인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법무부와 검찰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전속고발제도를 폐지할 경우 경쟁법 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소추권이 과도하게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전속고발제도는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더라도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법무부와 검찰이 경쟁법의 일차적 집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먼저 전문인력과 경험을 갖출 필요가 있다.
최충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choicg@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