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경기변동과 과오투자
09.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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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덕
1998년부터 2006년에 걸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집을 마련한 세대 가운데 이미 집을 잃었거나 수개월 내에 압류가 예상되는 경우는 대략 220만 세대라고 한다. 부시 대통령은 얼마 전 GM과 크라이슬러에 174억 달러-이 돈은 두 회사의 적자를 메우기에 충분한 것이 아님-를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왜 사업상의 착오들이 ‘한꺼번에 갑작스럽게’ 드러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 많은 기업가가 그들의 투자와 추정이 오류였다는 것과 자신들의 생산물을 예상했던 가격에 팔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발견하는가 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는 대규모의 실수, 실수의 집중, 자본재 산업에서의 교란 등과 같은 현상이야말로 경기변동의 핵심 문제이다.
미국에서는 연방준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역사상 최저인 1%로 인하한 2003년 6월을 즈음하여 경기변동(trade cycle)이 시작되었다. 경기변동은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단계는 이자율 하락에 의한 신용팽창은 화폐공급량 증가를 초래한다. 이때 기업들이 ‘과오투자(malinvestment)’의 유혹에 빠진다. 특히 자동차, 주택 등과 같은 자본재 산업에서 과잉투자(동일 산업에서 과잉투자가 이루어지면 중복투자가 됨)가 일어난다. 과잉투자 산업에서의 재화의 가격 상승이 생산요소의 가격을 올리고 소득의 증가를 초래하여 결국 소비도 늘어난다.
과오투자란 과잉투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부 산업에서 과잉투자가 일어나면 다른 산업에서는 과소투자가 일어난다(그러므로 경기변동이 과잉투자만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정상적일 때보다 과소투자된 산업에서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여 그 산업에 들어가는 생산요소들의 가격 상승과 소득을 증가시켜 소비도 늘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과소투자된 산업을 식별하기란 불가능하다. 과잉투자된 산업에서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뿐이다. 이러한 것이 '붐(boom)'의 대표적인 징표다.
경기변동의 두 번째 단계는 상당수 기업이 자신들의 투자가 이윤이 나지 않고 그 결과 투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즉 ‘위기(crisis)’ 국면이다. 다시 말해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투자가 과오투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낭비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이다.
다음 단계는 ‘침체(depression)' 국면이다. 이 단계에서는 과오투자된 공장이나 유휴시설이 청산되고, 적자기업이 파산하며, 적자기업이나 과오투자된 시설에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를 포함한 각종 생산요소가 갑자기 한꺼번에 다른(정확히 ‘낮은’) 생산단계(소비재 산업, 예를 들어 식당 종업원)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파산, 실업, 구조조정, 합병 등이 침체국면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침체국면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하자면 침체국면의 어려움은 과오투자와 왜곡이 발생한 붐 기간 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즉 위기국면과 침체국면이 어려움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위기·침체국면은 이미 발생했던 과오투자와 왜곡을 인식하고 치료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침체국면은 실제로는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회복'(recovery)‘ 국면이다. 잘못된 투자가 청산되고 과오투자를 한 기업가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 기업가를 변호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자율을 낮추어 통화량을 늘리면 대부분의 기업가들이 (일부 유능한 기업가마저도) 어떻게 과오투자를 하게 되고, 그런 과오투자가 어떻게 경기변동을 초래하는가를 설명한 것이다. 한마디로 갑자기 드러난 다수 기업가가 저지른 실수 덩어리는 ‘자본’에 대한 주요 시장신호인 이자율을 정부가 간섭하여 왜곡함으로써 발생한다.
이같은 경기변동 이론의 일부를 기초로 몇 가지 시사점을 유도할 수 있다. 첫째, 정부의 이자율에 대한 간섭으로 인한 통화팽창이 경기변동을 초래하기 때문에 침체를 해결하겠다고 이자율을 더 낮추어 신용팽창에 다시 박차를 가하면 ‘새로운’ 과오투자와 뒤이은 위기·침체가 잉태된다. 그리고 그것은 적당한 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현실로 나타난다.
둘째, 침체과정은 회복과정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멈추거나 늦추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해서는 안 된다. 회복을 더디게 하거나 저해할 뿐이다.
셋째, 경기변동에 따른 경기침체 때마다 과잉투자(중복투자 포함)한 기업가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을 포함한 정부가 통화팽창을 통해 기업가들로 하여금 그런 과오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경기변동의 궁극적 책임은 통화 관리를 맡고 있는 중앙은행을 포함한 정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넷째, 경기변동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화폐제도와 금융제도를 시장원리에 맞게 개혁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반복되는 경기변동은 거의 대부분 현재의 화폐제도와 금융제도가 시장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시장원리에 맞는 화폐제도와 금융제도인가 하는 주제는 차후의 과제로 미룬다.
마지막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2004년 11월), 중국 등도 최근에 이자율을 역사상 최저로 낮추어서 경기변동이 진행되고 있다. 경기변동의 정도, 시작 시기, 끝나는 시기만 다를 뿐이다.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침체가 해외경제 환경만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용덕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ydjeon@dae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