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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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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주주는 회사를 소유하는가?

09.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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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재벌 개혁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안이 결국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지주회사 규제 완화와 금산분리 완화 등의 경제 관련법들은 4월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이들은 기업집단의 소유구조를 사전적이고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대표적인 제도들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기업집단의 출자 자체를 총량적으로 제한하고, 지주회사 규제는 기업집단의 경영조직 선택을 막고, 금산분리는 대기업이 금융기관을 통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집단의 지배주주가 계열사를 이용해 실제 자신의 ‘소유지분’보다 많은 ‘의결권(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어 권한이 남용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 핵심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대규모기업집단 소유지분구조에 대한 정보공개’에 따르면 2008년 총수가 있는 28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이 4.23%, 계열회사 지분이 44.44%, 기타 지분이 2.29%로 내부지분율이 50.96%이다. 따라서 소수주주 지분은 49%이다. 이러한 발표가 있을 때마다 일부에서는 49%를 가진 소수주주들이 회사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4.23% 밖에 가지지 않은 총수일가가 계열회사 지분 44.44%를 이용해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한다고 비판하며 “소유하지도 않고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소유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이므로 소유한 주식의 수만큼만 지배권(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로 보면 기업집단에 대한 이러한 규제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기업집단 내의 계열사 간 피라미드식 출자나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을 통해 적은 주식만 가지고도 이보다 많은 지배권(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이 부여되는 차등의결권 주식의 도입에도 반대한다. 이와 같이 주주가 회사를 소유한다고 보면 기업집단 소유구조와 차등의결권 주식은 비정상적인 형태일 뿐 아니라 시장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소유권’의 기본원칙에서 벗어나는 반 시장적 소유구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원리의 근간을 이루는 또 다른 법적개념인 ‘계약’의 관점에서 회사 소유구조를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계약은 시장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권리의무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법적 수단이다. 계약의 관점에서 보면 회사지배권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히려 싼 가격에 주식을 구입해 더 많이 배당받기를 원하는 주주와 그 반대의 경우인 주주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 차등의결권 주식이다. 또한 기업집단 내 계열사간 출자 등으로 지배주주가 일반주주보다 더 많은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경영권이 집중되어 강력한 리더십 행사가 가능해짐으로써 회사의 성과가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기업집단 소유구조를 선호하는 주주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주주도 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의 소유구조가 자신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주주들의 몫이다.


결국 시장의 법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소유권과 계약의 관점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회사 소유구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양자의 관점 모두 주주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주주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함께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1970년에 회사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쓴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주주가 회사를 ‘소유’한다고 주장한 이후 본격적으로 주주자본주의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었으나 1980년대 이후 미국 학계에서는 ‘계약’의 관점에서 주주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이 주주의 재산권을 중요시하는 주주자본주의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또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다. 모든 주주들의 선호와 이해관계가 동일하다면 소유권적 관점이나 계약적 관점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발달함에 따라 주주들의 선호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고 이러한 다양한 선호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다양한 금융상품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가 회사를 소유한다는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계약의 관점에서 접근하며 주주들의 다양한 선호가 반영될 수 있도록 소유구조의 유연성을 확보해 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주들의 실질적 재산권을 더욱 잘 보호해 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회사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결국 계약의 관점에서 주주자본주의를 바라볼 경우 법의 역할은 주주들의 ‘소유권을 보호해 주기’ 위해 1주1의결권과 소유-지배 비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주주들의 ‘재산권을 보호해 주기’ 위해 다양한 회사 소유구조에 대한 이들의 계약적 선택을 도와주는 것이다. 곧 열릴 4월 임시국회에서 이러한 법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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